[과학으로 풀어본 역법] 학자들 '새천년은 200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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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셈 탈레이 주한 이란 대사는 1344년생이다. 올해 나이 44세인 그의 출생 연도가 이처럼 '오래전' 인 것은 이란에서 쓰는 달력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18일이 지나면 새 천년(밀레니엄)을 맞는다고 떠들썩하다. 그러나 학자들은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9백99년이 지났으므로 온전한 새 천년을 맞으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역법(曆法)의 차이나 이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다. 역법은 천문학과 수학의 산물. 과학을 바로 알면 해 바뀜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다.

◇ 0이 문제다〓사람들이 0(零)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수학자들에 따르면 0의 개념은 약 2천8백년 전 인도에서 개발됐다. 그러나 서양에서 0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전후다. 하나.둘.셋… 등의 순우리말은 있지만 0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없는 것도 이 개념을 뒤늦게 알았다는 증거다.

2000년을 21세기로 볼 수 없다는 논리도 0의 개념과 직결돼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김봉규 연구원은 "0의 개념 없이 달력을 만들다 보니 첫 해가 1년이었다" 며 "새 세기의 시작을 2001년 1월 1일로 보는 것은 세계 학계의 공통된 입장" 이라고 말했다. 세기는 1백년을, 밀레니엄은 1천년을 단위로 삼으므로 새 천년 출발일 역시 2001년 1월 1일이다.

◇ 밀레니엄은 남의 얘기다?〓밀레니엄을 맞는다며 떠들썩한 나라에서는 예외없이 서양력(그레고리력)을 쓰고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력을 쓰는 이란에 가면 서양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란의 오늘(서양력 1999년 12월 13일)은 1378년 9월 22일. 이슬람력을 쓰는 이슬람권 국가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유대력을 고집하는 이스라엘의 랍비(목회자)도 밀레니엄은 뚱딴지 같은 얘기로 들릴 뿐이다.

◇ 해가 기준인가, 달이 중심인가〓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달력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달력을 만들었던 기준 역법(曆法) 또한 제각각. 그러나 달 또는 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같다. 그레고리력은 대표적인 태양력으로 약 2천7백50년전 고대 로마력이 뿌리다. 이후 기원전 46년 로마의 케사르에 의해 율리우스력으로 개정되고, 1582년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이 다시 고쳐 오늘날의 그레고리력으로 만들었다. 그레고리력은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해, 실제 태양의 공전주기인 365.242196일과 유사하다.

반면 이슬람력은 태음력으로 큰달(30일)과 작은달(29일)을 번갈아 배치한 게 기본. 이는 달의 삭망월(보름에서 다음 보름 혹은 그믐에서 다음 그믐)인 29.53일과 매우 근접한 것. 한국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음력을 섞은 태음태양력을 쓰고 있다. 지금도 설날이나 추석은 음력이다. 반면 음력 중심이던 옛날에도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대설.동지 등 24절기를 사용했다.

◇ 달력에는 문화가 있다〓프랑스 달력은 미국과 같은 그레고리력이다. 그러나 한 주가 시작되는 것은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다. 때문에 프랑스 사람과 12월 몇째주 일요일에 만나자는 식으로 약속하면 십중팔구는 어긋난다. 일요일을 주말의 끝에 둔데 대해 프랑스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한 주간 일하고 쉬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고 추정했다. 미국의 기념일에는 무슨 달 몇째 요일 식인 경우가 많다. 천문연구원 성언창 박사는 "요일에 따라 생활이 달라지는 것을 반영한 합리주의가 바탕에 깔린 것 같다" 고 분석했다.

◇ 역법은 사람이 만드는 것〓학계의 일관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새천년위원회는 최근 21세기와 새 밀레니엄의 시작을 2000년 1월 1일로 공식 발표했다. 성박사는 "역법은 하나의 사회적 약속" 이라며 "천문학적으론 어떻게 정하든 변하는 것은 없다" 고 말했다. 종래의 역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법을 적용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실제와는 달리 역사에서는 사라져버린 날도 생겨났다. 우리 나라는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그레고리력)로 정하고 이후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어 1895년 11월 18일~12월 31일이 역사에서 없어져 버렸다.

김창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