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상견례도 못한 뉴라운드 대표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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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뉴라운드 협상 개막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국 시애틀 6번가에 자리잡은 쉐라톤 호텔에는 아직까지 방주인을 정하지 못한 채 한국 대표단 명의로만 예약된 방 20개가 남아있다.

뉴라운드 협상에 참석하는 한국 정부 협상단이 24일 오후까지도 확정되지 않아 투숙객 명단을 통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협상을 담당할 농림부의 경우 당초 국장급이 내정됐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김성훈(金成勳) 장관이 협상대표로 직접 참석키로 했다가 24일 오전에야 차관으로 최종 결정됐다.

반덤핑 규정 개정 등을 책임맡은 산업자원부도 처음에는 과장급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이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자 통상통인 이석영 무역위원회 상임위원(1급)으로 대표를 격상해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위원은 24일 이미 예정됐던 중남미 민관사절단 대표로 출국해 회의가 열린 다음인 오는 30일 오후에야 현지에서 합류할 예정이다.

다양한 의제를 놓고 벌이는 다자간 협상이란 하나를 양보하면 하나를 얻어내는 식의 패키지 협상이어서 무엇보다 부처간 공조가 중요하다. 하지만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이나 모의 협상회의는 물론 협상개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대표단 상견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협상 주무부서인 외교통상부는 "실무진 사이에 이미 원활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상황을 다 파악해 놓았기 때문에 대표단이 누가 되더라도 협상전략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다" 고 설명하지만 '준비된 협상' 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미국은 벌써부터 농산물 시장 개방.공산품 관세인하 등 기존 의제만으로 축소해 협상을 제 의도대로 타결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일본 등은 대표단을 확정하고 각국을 직접 방문해 자국 입장에 동조를 구하고 있다.

'최선을 다한다' 는 것 외에는 뾰족한 전략도 없는 정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시애틀회의 이후 2002년까지 본격적으로 이뤄질 부문별 실무협상에서도 '원칙' 보다는 '상황' 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기우(杞憂)' 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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