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큰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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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본선 32강전> ○박정환 4단 ●천야오예 9단

제5보(55~66)=현대 바둑은 어렵다. 수를 깊고 멀고 보는 탓에 짧은 해설로 변화의 전모를 따라잡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 지금 장면만 해도 백△가 흑▲를 노리는 수라는 것은 뻔하지만 왜냐고 물으면 얘기가 길어진다.

57로 몰았을 때 ‘참고도 1’처럼 두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거의 망한 수준이다. ‘참고도 2’ 백3으로 몰 수 있으면 약간 체면이 서고 이때 흑이 이어준다면 그럭저럭 할 만해진다. 하지만 흑에도 흑4부터 10까지 패를 만드는 강경 수단이 있다. 흑이 어느 시점에서 A로 버티면 양패가 된다. 역시 백이 망하는 것이다.

박정환의 58은 느슨한 듯 보이지만 깊은 수읽기가 담긴 최선의 한 수다. 58에 59는 절대의 응수. 백은 선수로 백의 하변쪽 퇴로를 봉쇄하고 60으로 씌워 소망하던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약간의 피를 흘리며 전투의 주도권을 잡은 날카로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천야오예, 이 친구의 배짱도 상상을 절한다. 놀라 도망치기는커녕 안으로 파고든다. 62로 인해 흑돌은 더욱 허약해졌는데 이처럼 휘청거리는 돌을 끌고 어디로 달아나려는 것일까.

한데 잘 보니 그게 아니다. 흑B가 선수여서 C의 출구가 열린 것이다. 큰일이다. 집 없는 백은 이 흑을 그대로 놓아줄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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