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자연보존협 결성한 前 치과의사 이기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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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만산홍엽인 내장산의 단풍은 가위 국보급입니다. 산뿐 아니라 물.사람까지 붉게 물들여 3홍(紅)의 극치를 이루는 단풍을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물려줬으면 합니다. "

치과의사 출신의 이기영(李基永.63.전북 정읍시 수성동)씨는 '내장산 산신령' 으로 불린다. 새하얀 백발에 내장산을 마치 손금 보듯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정읍시민, 특히 내장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대 치대 1학년인 56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내장산에 오른 李씨는 그 이후 지금까지 5천회 이상 내장산을 찾았다.

"한국전쟁으로 사찰.암자 등이 불타 스러지고 기왓장만 나뒹굴고 있는데다 단풍나무는 가지가 찢겨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고는 이 산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

61년 정읍에 치과병원을 차린 그는 처음엔 주말에만 산을 찾았지만 점차 내장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6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매일 등산을 하게 됐다. 산 계곡을 돌며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부러진 나무 살리기 운동, 부상자에 대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또 등산객들이 내장산을 보다 잘 즐길 수 있도록 주요 지점과 등산로 등을 낱낱이 담은 사진 10만장을 제작, 코팅한 뒤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큰아들에게 치과병원을 물려준 지난 95년부터는 아예 내장산 입구에 전세방을 마련, 혼자 자취하며 산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장산 및 주변에 서식하는 동.식물 현황을 꼼꼼히 조사하고 사진으로 찍어 자료집 10권을 만들었다.

최근엔 내장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70여명으로 '생태계자연보존협의회' 를 조직했다. 李씨는 회원들과 함께 산에 텐트를 치고 교대로 24시간 머무르며 산불 예방활동과 단풍나무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李씨는 "부인으로부터 '내장산과 결혼했느냐' 는 핀잔도 많이 받았다" 며 "앞으로 단풍나무와 함께 희귀 수종인 이나무.굴거리나무.비자나무 등의 씨앗을 받아 내장산 주변에 널리 확산시키는 게 꿈" 이라고 말했다.

정읍〓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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