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우산’ 다 준 미국이 한국에 바라는 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제4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22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렸다. 회의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오른쪽)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마주 보며 웃고 있다. [김태성 기자]

22일의 김태영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간 한·미안보협의회(SCM)는 미국의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대(對)한반도 안보 공약을 담아 주목을 끌고 있다. 향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지원 문제와 SCM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을 짚어본다.

아프간 지원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는 한국군의 아프가니스탄 지원에 관한 직접적인 표현이 들어 있지 않다. 다만 “평화유지활동·재건지원 등 광범위한 범세계적 안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을 증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는 항목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민감한 파병 문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했지만 한국의 군사적 기여를 우회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간접적인 파병 요청 발언과 엇비슷하다.

파병 여부를 포함한 지원 방안과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몫으로 남게 됐다. 다음 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하나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 전에 자국의 병력 증파를 비롯한 아프간 전략을 마련하고, 동맹국 등과 협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2차관은 이에 대해 22일 국회에서 “아프간 지원은 미국에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니고, 한국 정부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또 “경제 지원 규모는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며 “(파병 문제는) 협의 중인 사안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해 파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파병을 하더라도 민사 작전 부대나 공병 부대 등이 유력하며, 전투병은 보내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은 확고하다. 아프간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의 세 확대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인 민간지원팀(PRT) 요원을 보호하기 위한 수백 명 규모의 경계 병력 또는 경찰을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예영준 기자

전시작전통제권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예정대로 2009년 4월 17일 한국에 전환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양국이 그동안 한국의 국방개혁과 맞물려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온 만큼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 뒤 한국군이 주도할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과 한국군과 주한미군 구조 개편 작업 등은 이미 가속도가 붙었다. 중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작권 전환 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군의 준비에 미군들도 놀랄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전작권이 전환돼도 사실상 한·미 연합체제로 전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006년에 이어 올해에도 핵실험과 장·단거리 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했지만 양측의 전환작업이 상당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전작권 전환에 맞춰 두 장관은 주한미군 기지 이전과 반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미는 전작권 전환에 따른 한반도 전쟁 수행 능력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지연시킬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위협을 주시하면서 연례회의를 통해 전환계획의 이행 과정을 주기적으로 평가·점검해 반영하겠다”고 합의했다. 군 고위관계자는 “전작권 전환은 한·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2010년과 2011년의 전작권 전환 과정 평가에서 북한의 핵 등 군사적인 위협이 심각하고 기술적인 문제가 드러나면 전환이 2012년 이후로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전작권 전환 연기론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의 하나로 보인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북핵 위협 대응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강도 높은 대응책을 내놓았다. SCM 공동성명에 명기된 3대 확장 억지(extended deterrence) 수단이다. 미국이 핵우산과 재래식 타격, 미사일방어(MD)로 구성된 확장 억지 수단을 구체적으로 동맹국에 제공하겠다고 명시하기는 사실상 처음이다. 그만큼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강력한 대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동맹국에 제공한 핵우산은 지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핵잠수함에 장착된 탄도미사일(SLBM), B-52 등 전략폭격기에 실린 핵미사일 등이다. 확장 억지는 기존의 핵우산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등장했다. 2006년 워싱턴에서 열린 SCM에서 한국 측의 요구로 ‘확장 억지’라는 용어만 공동성명에 명기했으나 미국 측이 부인했을 정도였다.

이번 공동성명에 따라 미국은 앞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조짐이 보이면 3대 확장 억지 수단을 한반도로 배치할 전망이다. 또 확장 억지를 지원할 정찰위성 등 감시수단과 재래식 타격전력을 탑재한 항공모함도 한반도에 투입해 북한의 핵 사용을 억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를 요격하는 것도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핵에 대해서는 선언적 차원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적극 대처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 MD체계에 따라 요격을 시도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공동성명에 MD 공약이 명기됐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이 곧바로 MD체계에 동참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의 참여 부분은 향후 논란을 부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미래 양국관계 방향 이번 SCM 공동성명에는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이 곳곳에 들어있다. 양국 정상이 6월에 양자·지역·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해나가기로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성명의 8항은 “한·미 국방장관은 한·미 동맹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지역 및 범세계적으로 협력적 관계 발전 및 다자 간 안보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한·미 동맹이 북한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북아와 글로벌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동맹의 외연이 훨씬 넓어진다는 얘기다.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이 해외로도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것은 이의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

성명이 협력 분야를 평화유지 활동, 안정화 및 재건 지원 등으로 제시한 점도 주목거리다. 동맹의 역할도 많아질 게 분명해 보인다. 게이츠 장관은 이에 대해 21일의 연설에서 비확산, 탄도미사일 방어, 지역 안보협력, 인도주의적 지원 등도 들었다. 특히 미국은 한·미 동맹의 글로벌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게이츠 장관은 “한국군의 미래 전력은 한반도 방위뿐 아니라 지역적, 글로벌 안보의 공헌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에 정부가 제대로 호응하지 못할 경우 한·미 동맹의 미래에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한·미 동맹의 지역화, 글로벌화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이다. 양안 문제에 주한미군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동맹의 확대에 따른 경제적·외교적 부담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종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