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고려속요 '이상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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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가 오다가 개더니 다시 눈이 많이 오신 날에

서리어 있는 수풀의 좁은 굽어 돈 길에

다롱디우셔 마두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앗아간 내 임을 사랑하니

그이야 무서운 길에 자러 오겠는가

때때로 벼락이 나서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이 죽어갈 내 몸이

내 임을 두고 다른 산을 걸어갈까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하고자하는 기약이야 더욱 있아오리까

아서라 임이시여 한 곳에 가고저하는 기약일 뿐이외다

- 고려속요 '이상곡(履霜曲)'

굳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현대어로 고치기 전의 옛 말 그대로의 노래가 뜻을 모르더라도 한결 노래의 정감이 그윽하다. 뜻과 상관없이 노래 자체가 싱그럽게 살아난다.

이런 옛 말과 오늘의 말 사이의 너무나 큰 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나날을 담고 있다. 고려시절의 과부는 꼭 정절의 노비가 된 것은 아니다. 임을 품을 자유가 있었다.

비가 갠 뒤 눈이 와서 험한 눈길을 두고 임이 오기를 안타깝게 바라는 여인의 연정이 애틋하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다른 사내도 있을 법한데 그것을 억누르는 일편단심이 새삼 뜨겁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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