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민에 경의” MB는 DJ·노무현과 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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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일 베트남 하노이시에 있는 베트남 국립대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하노이=조문규 기자]

“베트남 국민에 대해 존경과 경의의 뜻을 표하고 싶다.” 5박6일 일정의 동남아 3개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 순방을 위해 20일 베트남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이 베트남 국영TV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사람들은 미래가 중요하다면서도 늘 과거에 얽매여 있는데 베트남은 매우 미래지향적이다”, “한국과 동일한 역사의식을 가졌다고 본다”, “한국엔 10여 개 국가의 사람들이 와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을 가장 좋아한다.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라고 친근감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베트남의 ‘국부’인 호찌민 전 주석에 대해 “역사는 사람을 빛나는 옥으로 만든다는 말을 하셨다.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했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31만여 명을 파병했던 참전국이다. 아직도 격전지였던 베트남 중부지역 곳곳엔 증오의 위령비들이 남아있다. 수교 17년째를 맞은 양국이 아픈 과거사를 넘어 미래의 동반자로 나아가기 위한 이 대통령의 접근과 협력 강화 방안이 무엇일지 주목받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과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21일로 잡혀 있다. 청와대는 ▶경제통상·에너지 분야와 ▶한류 등 사회·문화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숨겨진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과거사 문제다.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직전 양국이 치러야 했던 ‘월남전 홍역’이 그걸 증명한다. 우리 정부의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안에 “세계 평화 유지에 공헌한 월남전 유공자와…”란 문구가 포함된 게 베트남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가까스로 진화했지만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휘발성이 큰 뇌관이었다.

◆보수층 반발 부른 DJ 사과=고 김대중(DJ)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1998년 베트남을 방문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다. 공산당 창건자인 호찌민((胡志明) 묘소도 처음 찾았다.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 전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6·25에 참전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사과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당시 “(DJ의 사과가) 참전 용사들의 가슴과 대한민국의 명예에 못을 박았다”고까지 썼다. DJ는 그러나 2001년 방한한 쩐 득 르엉 국가주석에게 “불행한 전쟁(베트남전)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 발 더 나갔다.

92년 수교를 하고 96년 베트남을 찾았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호찌민 묘소도 찾지 않았다.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만 했다. 대신 호찌민 묘소 헌화를 하고,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10초간 묵념했다.

◆MB의 해법은=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수교할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등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기로 했었다. “(파병은) 냉전 체제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선의 의견 교환에 베트남 정부가 동의했던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승전국으로서 굳이 사과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고, 한국과의 수교에서 얻는 실리도 중요시했다.

이 대통령은 21일 호찌민 묘소에 헌화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베트남 측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 대통령이 먼저 거론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며 “베트남이 거론하면 응대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호찌민 묘소 헌화로 과거사와 관련한 성의는 보이되 적극적 언급은 피한다는 ‘전략’이다. 전혜경 교수는 “정부 차원의 사과보다는 전쟁 당시 민간인 피해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게 양국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노이=서승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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