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⑧ 생체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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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망원경 발명 400년, 다윈 탄생 200년.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남다른 2009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중앙일보와 ‘문지문화원 사이’는 과학 교양의 대중화를 위해 ‘10개 키워드로 읽는 과학책’ 시리즈를 매달 연재합니다.

솔방울처럼 생긴 콩알 크기의 기관이 두개골 깊숙이 묻혀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헤로필루스가 사고의 흐름을 조절하는 기관이라고, 2000년 뒤 데카르트가 정신과 몸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지목했던 ‘송과선’이다.

이토록 철학자의 많은 관심을 받았음에도 송과선의 기능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우리 몸 속에 내장된 시계를 지배·조절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생체시계’는 24시간의 자전주기, 1년의 공전주기를 갖는 지구라는 특수한 환경에 생명체가 수십 억 년에 걸쳐 적응한 결과다.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지구의 자전주기에 맞게 깨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이 든다. 밤낮의 변화를 전혀 알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에서 지내더라도 거의 24시간 주기로 자고, 깨어나, 활동한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최근에는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시계 유전자’까지 발견됐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마다 하나씩 분자시계가 들어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

부산 감만 부두의 야경. 밤낮 없이 일하는 당신, 하지만 당신은 지구 행성에 사는 생명체란 걸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몸 속엔 지구의 24시간 자전주기에 맞춰 진화해 온 ‘생체시계’가 작동한다. 문명의 선물인 ‘전구’는 생체시계를 교란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중앙포토]


생체시계는 건강과 직결된다. 이를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신체활동에 좋은 시간은 언제인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아이를 갖기에 좋은 시간, 수면을 취해야만 하는 시간도 고를 수 있다. 뇌경색·천식·관절염·심근경색·중풍 등 숱한 질병은 특정 시간대에 주로 발병하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도 있다.

예컨대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동틀 무렵에, 골관절염은 해질 무렵에 증세가 심해진다.

생체시계의 시간표를 무시했을 때, 그 대가는 가혹하다. 수면장애는 물론 우울증·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 생체시계가 만성적으로 교란되거나 시계 유전자가 망가진 경우 암·비만·2형 당뇨·심혈관질환·노화 등 갖은 병리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최근 연구도 있다. 생체시계를 지키는 것만으로 여러 성인병을 획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생체시계 연구는 여러 면에서 유용하다. 항암제는 어느 시간대에 투여해야 가장 효과가 좋으면서도 부작용이 적을까, 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피부가 상하고 감기에 잘 걸릴까, 체르노빌 원전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막으려면 교대근무의 스케줄은 어떻게 짜야 할까, 짧은 해외출장 중의 중요한 회의는 몇 시로 정해야 할까,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인의 생체시계를 망가뜨린 주범은 전구다. 19세기에 발명된 전구는 인류의 문명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자 비극의 씨앗이다. 일례로 전구의 발명으로 인간은 캄캄한 밤에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또 인공조명의 보편화로 대도시 중심의 ‘24시간 사회’가 일상화됐다.

하지만 교대근무, 야간근무, 과로와 수면부족, 대륙 간 여행 등에 따른 생체시계 교란과 20세기 후반 성인병의 만연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아시는지.

대도시의 불빛은 생태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수십 억 년 진화의 역사를 갖는 생체시계와 고작 수백 년 간 발달한 과학문명이 충돌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빛 공해’가 미칠 파장과 그 병리적 귀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때다.

생체시계에 대한 최근 연구는 빛 치료, 어둠 치료, 각성 치료 등 ‘시간치료’라는 획기적인 개념도 만들어 냈다. 생체시계와 질병 사이의 놀라운 연결성이 조목조목 규명된다면, 우리 모두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조세형 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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