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또 ‘보너스 잔치’… 정치쟁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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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월가 금융회사의 ‘보너스 잔치’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자칫 정치 이슈로 번질 조짐이다.

골드먼삭스·JP모건 등 월가 금융회사가 최근 3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한 뒤 천문학적 보너스 지급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지만 중소기업·서민은 아직 파산과 실업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국민 세금으로 기사회생한 월가가 대출을 늘리기보다 금융위기를 부른 투기 거래로 이익을 내자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월가 보너스 잔치 예고=최근 골드먼삭스·JP모건은 3분기에 각각 33억 달러와 36억 달러 이익을 발표했다. 부실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씨티그룹도 1억 달러 이익을 냈다. 월가의 ‘대박’에는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도움이 컸다. 정부는 월가가 떠안은 부실채권을 사주거나 지급을 보증해 파산을 막아줬다. FRB의 제로금리 정책은 월가가 싼값에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여기다 리먼브러더스·베어스턴스와 같은 투자은행(IB)이 퇴출되자 살아남은 투자은행들에는 시장이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됐다. 그 덕에 깜짝 실적을 내자 임직원에 대한 천문학적 보너스 지급 예고로 이어졌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23개 월가 금융회사가 올해 지급할 임직원 보수는 1400억 달러로 추산됐다.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것이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07년(1300억 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증폭되는 비난 여론=실업률이 지난달 9.8%를 넘어 10%를 넘보는 상황에서 월가 보너스 이야기는 여론을 악화시켰다. 게다가 투기 거래 규제를 막기 위해 의회를 상대로 한 월가의 로비가 전방위로 펼쳐진 것도 비판 여론을 부추겼다. 소비자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로버트 바이스만 회장은 “월가는 보너스 잔치로 미국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게다가 월가의 깜짝 실적이 주로 채권·통화 거래에서 나온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시중 돈줄이 마르는 것을 우려해 금융회사를 파산 위기에서 구해줬지만 정작 금융회사는 국민 세금으로 대출보다 다시 금융거래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더글러스 엘리어트 연구원은 “경쟁자들이 파산하자 살아남은 금융회사는 수수료를 마음대로 올려 이익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정치 이슈화=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 직후 미국 보험사 AIG를 겨냥했다. 정부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가 임직원에게 천문학적 보너스를 주는 건 “부끄럽고 무책임한 짓”이라고 공격했다. 오바마의 언급 후 미 정부는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 임직원의 연봉을 규제하는 ‘연봉 차르’까지 임명하며 월가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 움직임은 월가 로비 공세를 받은 의회에서 막혔다. 월가 연봉 규제법이 하원만 통과하고 상원에선 논란만 거듭했다. 그러자 18일 데이비드 액설로드 선임고문을 비롯한 오바마 측근은 TV 방송에 출연해 월가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로 향할지 모를 여론의 화살을 의식해서다. 여론이 더 악화된다면 의회에서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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