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감청조직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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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정보원이 보유.운영 중인 감청(監聽)시설에 대한 공개 문제로 15일 국정원에 대한 정보위 감사는 초반부터 파행을 겪었다.

국정원과 여당이 '감청시설 공개불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발, 감사를 거부한 채 전원 철수한 것.

서울 내곡동 국정원 본관에서 열린 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도.감청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높은 만큼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감청설비를 보여달라" (金道彦의원), "국내.국제전화에 대한 감청이 국정원 제8국(과학보안국)내 운영6과, 7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李富榮의원)" 며 설비공개를 촉구했다.

야당의원들은 이와 함께 과학보안국의 조직이 1국2단10개과로 구성돼 있음을 공개했고 "8국의 위치가 국정원 건물 3동 5층과 6층" 이라고 정확히 지적, 국정원 관계자들을 당혹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부영 의원은 이와 관련, 별도의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의 전국 11개 지부에서 지부장 직속의 과학보안계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과학보안계도 해당지역에서의 감.도청을 하고 있다" 고 밝혔다.

李의원은 이와 함께 "휴대폰 감청도 가능하며 이와 관련, 관문(關門)전화국에서 전화고장 신고 접수 등을 책임지고 있는 시험실장이 MDF단자에 주파수 해독기를 부착하는 등 국정원에 협조해주고 있다" 며 전화국과 국정원간의 연결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은 감사에 앞서 오전 기자실에 들러 "필요한 경우 전화국을 활용해 합법적 감청만 하고 있다" 며 별도의 감청설비가 없음을 주장하다가 이같이 의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추궁하자 감사에서는 '과학보안국' 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千원장은 "외국의 정보기관 중 정보시설을 보여주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고 끝내 공개를 거부했다.

千원장은 또 "우리가 불법감청을 했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시설과 장비를 본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며 "원장직을 걸고 맹세하는데 불법도청은 한 건도 없다" 고 '불가'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도 千원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국민회의 임복진(林福鎭).박상천(朴相千), 자민련 이긍규(李肯珪)의원 등은 "국정원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면 못하는 것 아니냐" 고 가세했다.

김인영(金仁泳.국민회의)정보위원장도 "야당의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피감기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 며 버텼다.

그러자 한나라당 간사인 김도언 의원은 "국정원이 (설비를)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데 더 이상 감사를 하는 의미가 없다" 며 보이콧을 선언. 박관용(朴寬用)의원 등은 "정부기관이 도.감청 장비를 아무런 규제와 통제없이 마구잡이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면서 "최근엔 무허가 업자로부터 장비를 구입한 사실까지 드러나지 않았느냐" 고 비난했다.

이어 이부영.박관용 의원이 감사장을 박차고 나갔으며 회의는 오후 1시40분쯤 정회. 오후 감사는 여당만의 '반쪽 감사' 로 치러졌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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