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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어도 변함없는 일본의 자국민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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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지난 주말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 떨어진 니가타(新潟)에 다녀왔다. 아버지 전근을 따라 1980년대 중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20여 년 만에 찾은 니가타는 변한 것이 없었다. 집·학교, 하굣길에 친구들과 들른 편의점·빵집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이곳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피해사건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77년 11월 하굣길의 중학생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당시 13세)가 이곳에서 공작선에 태워져 북한으로 끌려갔다. 북한에 납치됐다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90CE>) 전 총리와 귀국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52) 부부, 소가 히토미(曾我ひとみ·50) 모두 니가타 출신이다.

니가타는 일본과 북한을 오가는 만경봉호가 입항하는 곳으로, 과거부터 북한계 조총련의 영향력이 컸다. 다른 지역에 비해 큰 조선학교가 있었는데, 80년대까지만 해도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

하지만 90년대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가 공론화하면서 니가타는 급변했다. 딸이 가출했거나 유괴를 당했다고만 생각하고 전근은커녕 집을 옮기지도 않았던 메구미의 부모는 납치 피해자 귀환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가족을 데려와 달라”며 일 정부를 압박했고, 일 정부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대북 제재에 나섰다. 니가타의 해안가와 주변 도로에는 “납치 피해자의 정보를 기다립니다”는 납치피해자가족회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니가타 시청 건물에는 “요코타 메구미를 비롯한 납치 피해자를 한 명도 남김없이 고향으로 데려오자”는 플래카드가 몇 년째 걸려 있다.

“납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과거 자민당 정권은 대북 강경정책을 구사하면서 우익단체와 납치피해자가족회 등의 지지를 받았다. 납치피해자가족회가 8월 총선 결과에 적잖은 우려를 나타낸 것도 이 때문이다. “자민당 정권의 외교정책을 180도 되돌리겠다”는 민주당 정권이 자칫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납치 피해자 문제의 진전 없이 대북 협상은 없다”고 다짐했다. 12일엔 내각부의 오쓰카 고헤이(大塚耕平) 부장관이 니가타의 메구미 납치 피해 현장을 찾았다. 이튿날인 13일엔 각료회의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대북 강경정책을 썼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2006년 설치한 대책본부를 폐지하고 직원과 예산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본부장을 맡아 이번 주 안에 구체적인 기구 운영과 정책 추진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이 보수 자민당 정권보다 대북 정책에서 보다 강경하다는 인상이다. 민주당 정권이 우익 여론을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 정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자국민 보호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는 논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