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직 전문기자리포트] '고속도로를 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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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한국도로공사가 답답하다.

분당에서 시작된 '통행료 안내기 운동' 이 구리.양주로 번지고, 다른 도시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지난 총선 때도 대도시 주변 도시엔 '통행료 철폐' 공약이 난무했고, 내년 선거판에도 어김없이 나타날 전망이다.

그런데 그렇게 무리하게 통행료를 받는 데도 고속도로 운영은 적자다.

도공은 27개 노선 2천97㎞에서 97년까지 8조1천억원을 벌었지만 유지관리.재투자비가 8조6천6백억원이나 들어 전체로는 5천6백억원을 손해봤다.

최초건설비 9조4천여억원에 대한 이자는 엄두도 못낸다.

도공의 빚은 올해말 9조원을 넘긴다.

올해 통행료.휴게소 수입은 1조6천억원. 유지관리비.인건비 등 비용 9천억원을 빼면 7천억원쯤 남는다.

이 돈으론 1조7천억원이나 되는 올해분 원리금 상환도 안된다.

도공은 또 올해 고속도로 신설비로 2조2천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부족액 (3조2천억원) 을 외부차입금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도공은 이를 위해 주로 3년만기 채권을 발행한다.

내년엔 사정이 더 나쁘다.

수입은 2조원으로 늘지만 원리금 부담이 더 커져 3조5천억원의 새 빚을 얻어야 한다.

때문에 총 부채는 내년말 11조2천억원이 되고, 그 다음해엔 더 늘어난다.

도공은 어쩔 수 없이 '빚이 빚을 부르는 경영' 을 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도 없다.

도공은 "통행료도 제때 올려주지 않으면서 고속도로 시설투자비를 떠맡긴 정부의 책임" 이라고 미룬다.

정부는 후손에게 떠넘긴다.

"고속도로는 후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그들도 당연히 절반쯤은 부담할 의무가 있다. 일단 투자가 완료되면 그때부터 빚을 탕감할 수 있다. " 한가한 소리다.

고속도로를 현재 계획대로 건설할 경우 통행료를 매년 20%씩 올려도 2005년 차입금 잔액은 21조원, 연간 상환원리금만도 9조원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통행료수입 전액으로도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도공이 제안하는 빚더미에서 나오는 방법은 세 가지다.

통행료를 올리거나, 정부 재정부담을 늘리거나, 뭉칫돈을 꿔오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행이 모두 만만치 않다.

우선 통행료 인상은 극히 어렵다.

올해 기껏 10%를 올렸는 데도 반발이 엄청나다.

다른 부작용도 있다.

통행료를 안내려고 돌아가는 교통량이 늘어나 시내도로.국도가 혼잡해지고 사고율이 높아진다.

지금도 통행료를 안내려고 우회하는 화물차 때문에 일부 국도는 '살인도로' 다.

정부재정 지원을 늘리기도 힘들다.

국토연구원의 "향후 5년 동안 정부재정에 의한 투자 가용재원은 30조원 정도 부족할 것" 이라는 분석도 있고, 이제는 정부지원비율 50%를 10~20% 늘려봐야 별 소용도 없다.

뭉칫돈을 꿔오는 것도 차질이 생겼다.

운영권을 담보로 추진한 10억달러짜리 해외차입이 정부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것. 3년짜리 빚을 10년짜리로 바꿔 당장 숨통을 틔우자는 의도지만 성사되더라도 원리금 상환 부담은 여전하다.

민자 (民資) 유치는 요즘 더더욱 안된다.

아예 운영권을 파는 건 어떨까. 외국기업에 팔면 더욱 좋고 국내기업도 괜찮다.

운영 중인 고속도로는 다른 상업적인 기업에 비해 현금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 투자위험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조건만 맞으면 국내외 기업이 군침을 흘릴 만한 투자대상이다.

국토연구원 이규방 (李揆邦) 박사는 우리나라 전체 고속도로의 30년간 운영권가치를 총 17조원으로 계산했다.

특히 경부고속도로의 운영권 가치는 8조원이나 된다.

도공 빚을 거의 한꺼번에 지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30년 후엔 고속도로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적자 고속도로.신설 고속도로를 수익성이 좋은 고속도로에 끼워 묶음으로 파는 방법도 있다.

도공은 고속도로를 다 팔고 지주 (持株) 회사로 변신하면 된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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