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주년] 2. 골 깊어가는 빈부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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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베이징 (北京) 의 차오양 (朝陽) 구 싼리툰 (三里屯) .30여개 카페가 2백m 가량의 길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다.

14일 저녁 '주바제 (酒파街) 로 불리는 이곳에 어둠이 깔리면서 고급차 '푸캉 (富康)' 을 몰고 온 젊은 남녀 커플이 차에서 내렸다.

푸캉은 프랑스와 중국이 합작생산한 여성 취향의 승용차. 기다렸다는 듯 거지들이 몰려들었다.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보채지도 않는 젖먹이를 대충 둘러업은 여인도 끼여 있다.

그들에겐 이미 겨울이 와버린 걸까. 한결같이 너덜거리는 옷을 몇개씩 껴입었다.

할아버지 맹인을 앞세운 할머니도 한쪽 구석에서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젖먹이 여인이 구걸에 성공하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나도 한푼' 하고 조를 기세다.

멋쟁이 커플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꼬마전구 장식이 요란한 카페로 들어선다.

기다리던 친구들과의 인사가 소란스럽다.

흥청대는 테크노 댄스 음악이 차도까지 밀려나온다.

카드나 주사위 놀이에서 진 사람이 생면부지 옆 테이블의 손님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돌아오는 게임이 한창이다.

너나 할 것없이 모두 어울린다.

그러나 계산만큼은 철저한 'AA제 (制)' 다.

각자 제몫을 낸다는 뜻이다.

하릴없이 젖먹이 여인과 노인들은 카페의 요란한 불빛이 따가운 듯 나무 뒤 어둠속으로 피해버린다.

그리곤 차디차게 식은 빵을 나눈다.

베이징의 밤은 부 (富) 와 빈 (貧) 의 두 얼굴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싼리툰에서 북쪽으로 5백m 가량 떨어진 화두 (華都) 호텔 네거리. 이 호텔과 동쪽으로 이웃한 쿤룬 (崑崙) 호텔 사이엔 밤의 여인들이 싸구려 웃음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분주히 쫓고 있다.

서쪽으로 이웃한 징청 (京城) 빌딩 사이론 중국이 자랑하는 훙치 (紅旗) 등 고급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고 난다.

연회가 있는 것 같았다.

창안 (長安) 클럽, 베이징 중국회 (中國會) 등과 함께 베이징 3대 사교클럽인 징청클럽의 50층 회전식당에 불이 환하다.

이 클럽은 회원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비의 제재를 받는다.

평등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빈부차로 보이지 않는 신분의 금이 쳐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올해 21세의 팡샤오리 (方小莉) .가난이 싫어 쓰촨 (四川) 성에서 올라온 그녀는 밤마다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왕푸징 (王府井)에 자리잡은 디스코텍, 허핑 (和平) 하우스를 찾는다.

놀러간다기보다 출근한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입장료 30위안 (약 4천2백원) 만 내고 들어가면 홍콩인 등 이곳을 찾은 남성들과 어울려주는 대가로 3백~4백위안씩을 거뜬히 챙긴다.

1m75㎝의 늘씬한 몸매 덕에 공치는 날이 거의 없다.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집념을 불태우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 때문일까. 요즘 유행하는 춤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야오야오터우 (搖搖頭)' 다.

절규하는 테크노 댄스 음악 '달이 야기한 불행 (月亮惹的禍)' 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그녀에게선 가난을 떨쳐버리려는 힘겨움이 배어난다.

중국 건국 50년. 중국은 78년 개혁개방과 함께 '먼저 부자가 돼 남 또한 부자가 되는 것을 도우라' 는 덩샤오핑 (鄧小平) 의 '선부론 (先富論)' 을 실천해왔다.

사영기업가를 중심으로 1인당 연소득 5만위안 (약 7백만원) 이상의 신흥 부유층이 3천만명이나 탄생했다.

중국 당국의 집요한 노력으로 한해 소득 6백40위안을 밑도는 절대빈곤층은 78년 2억5천만명에서 지난해엔 4천2백만명으로 감소했다.걸인들은 적게는 10여만, 많게는 1백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요즘 들어 걸인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경제발전 때문이란 게 민정부 (民政部) 의 설명이다.

모두 가난했던 시절엔 걸인이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다.

선부론은 이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아직은 남보다 내가 먼저 부자가 되는 일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가진자들의 울타리는 높아만 가는 느낌이다.

그들이 선부론의 뒷부분, 즉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자는 주장에 어느 정도나 따라와 줄 것인가.

4천2백만명의 빈곤층과 농촌의 저소득층, 도시의 샤강 (下崗.정리휴직)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신흥 부유층들에게 손을 내밀고만 있을까. 모두 함께 가난해도 좋다는 '가난의 평등' 을 외치며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을까. 그래서 또다른 사회주의를 실험하자고 나서지는 않을까. 요즘 중국의 식자들을 괴롭히는 질문들이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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