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요원 추방파장] 한.중 외교갈등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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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내 탈북자 문제가 한.중간 외교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안당국은 지난 7월 탈북자 관련 정보수집 등을 위해 자국내에서 활동하던 우리 정보요원을 무더기로 추방한 데 이어, 목사 등 우리 국민 3명을 탈북자와 함께 연행해 20일이 넘도록 조사 중이다.

한.중 양측 모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 이같은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우리 정부로서는 그동안 탈북자를 외면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다.

국내 여론은 물론 국제사회.인권단체도 우리 정부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UNHCR) 은 중국내 탈북자가 5만명에 이른다고 밝혔고, 지난달 탈북자 지원단체인 '좋은 벗들' 은 자체 조사결과를 토대로 30만명을 주장했다.

실정이 이런데 정부가 모른척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각종 탈북자 지원.인권단체는 중국내 탈북자의 '난민지위 인정' 등을 우리 정부가 중국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반면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2일 우다웨이 (武大偉)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언론재단 초청강연에서 "중국내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북한이 해결할 문제" 라고 선을 그었다.

"탈북자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 이라는 입장이다.

중국의 태도가 계속 이처럼 완강할 경우 중국내 탈북자의 귀순길은 막히게 된다.

문제는 정부에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탈북자 지원활동을 이유로 우리 목사가 중국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공식대응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를 자극해 문제를 더 꼬이게 할 필요가 없다" 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데 대한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지나치게 미온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 들어 햇볕정책의 성과를 의식해 북한을 공연히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계당국에서조차 탈북자 문제를 등한히 해온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탈북자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나 중국 당국과의 외교적 협조를 모색하는 대신, 불필요하게 중국 당국을 자극하는 정보활동을 벌여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탈북자 문제를 위해 활동하던 우리 정보기관의 중국내 대북 (對北) 정보망이 와해됐다는 점도 상당한 충격이다.

연행됐던 30여명의 요원 중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신분과 활동내용을 밝혔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그만큼 내사를 통해 상세한 자료를 확보했고 이를 들이대자 꼼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정보망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이라고 우려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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