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회계사 3천만원 공무원 변신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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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무리 돈 때문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사회지만 돈만이 인간의 선택을 좌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중앙인사위원회 직무분석과장 박기준 (朴基俊.34) 씨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朴과장은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회계 컨설팅 분야에서 '잘 나가는' 회계사였다.

회계법인의 공동 이사로 연봉이 1억원 정도였다.

그런 그가 지난달 중앙인사위원회의 개방형 임용 공개채용에 응시,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연봉 3천여만원짜리 '박봉' 의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4급 계약직으로 봉급이 3분의1로 깎이는 '불이익' 을 감수하면서 국민의 공복이 된 까닭은 의외로 소박하다.

"공무원으로 성공할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그냥 직무분석 업무를 제가 할 수 있는 데다 나라를 위해 보람도 있을 것 같고 또 재미도 있을 거란 염두에서 도전해 봤습니다. "

서울대 경영학과 4년 재학 중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대학원을 마친 뒤 한 회계법인에서 정부.의료 조직 컨설팅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는 97년 2월 동료 및 선.후배 11명과 함께 ㈜가립회계법인을 설립해 재경부.연세의료원.삼성물산의 업무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공무원으로의 변신과정에서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 동료는 "회사가 한창 커가고 있는 마당에 지금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고 만류했다.

가족들도 보수 좋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2년 계약의 서기관으로 가는 선택을 환영할 리 없었다.

"지원서를 내놓고도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결국 아직은 젊기 때문에 돈벌이도 좋지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판단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어 수입이 갑자기 줄더라도 버틸 수 있기도 하고…. "

朴과장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탓에 오전 6시에 일어나 승용차로 사무실에 도착해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조만간 버스나 전철을 타고 사무실로 갈 수 있는 서울 도심으로 이사올 계획이다.

출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공무원 봉급으로 자가용 기름값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업무는 개방형 공무원 임용제의 틀을 잡는 작업. 어떤 자리를, 어떤 방법으로 개방해 민간인을 포함한 전문가를 공직사회에 끌어들일지를 연구하고 있다.

朴과장은 직무분석을 마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미련없이" 공직을 떠날 작정이라고 한다.

"짧은 기간에 별 그리 대단한 업적을 남기겠습니까. 다만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엘리트 공무원들이 획일적인 필기시험을 통해 채용되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영국같이 민간과 공직사회가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데 조그마한 벽돌이 되고 싶습니다. "

1m78㎝의 훤칠한 키에 금테 안경을 쓰고 색깔 있는 와이셔츠를 입은 그에게서 바람직한 '21세기형 공무원' 의 참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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