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U-20 월드컵] 어제는 잊고, 오늘에만 집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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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어라’.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향해 도전장을 던지는 홍명보 팀의 ‘필승 키워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9일 오후 11시30분(한국시간) 이집트 수에즈 무바라크 스타디움에서 가나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8강전에서 맞붙는다. 승리하면 19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26년 만에 4강 신화를 재현한다.

◆모든 게 달라졌다=카이로에서 파라과이를 3-0으로 KO시키고 수에즈로 돌아온 한국 대표팀에는 여유가 넘친다. 수에즈는 한국이 21일 이집트에 입성한 뒤 조별 리그 3경기를 치러 16강 진출을 일궈낸 ‘약속의 땅’이다. 반면 가나는 수에즈에서 처음 경기를 치른다. 주장 구자철은 “꼭 원정 경기를 갔다가 홈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가나가 16강전에서 연장 혈투를 치르는 동안 한국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출장 정지로 인한 전력 공백도 가나는 2명(아베이쿠 콴사·오포쿠 아게망), 한국은 1명(김보경)이다. 천운이 홍명보 감독과 함께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0-2로 패한 카메룬전, 0-1로 뒤지다 극적인 동점골로 기사회생한 독일전 때와는 모든 게 다르다. 대회 초반 무관심했던 팬들도 한국의 승리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자신감과 사기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다. 홍 감독은 바로 이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건 절제와 겸손”이라며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려 애쓰고 있다.

반면 한국을 맞이하는 상대 팀의 태도도 달라졌다. 셀라스 테테 가나 감독은 “무시무시한 팀이다. 굉장히 경계한다”며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다.

◆잘 싸운 기억도 잊어라=토너먼트에서는 단 한번의 실수가 승패를 좌우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골키퍼와 수비라인의 실수는 치명적이다.

골키퍼 김승규는 3경기에서 1골만 내줬지만 불안한 면도 노출했다. 파라과이전 후반에는 동료의 패스를 받아 길게 공을 내찼지만 제대로 맞지 않아 상대 선수 앞에 떨어졌다. 상대 역습이 무위로 끝나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되풀이돼서는 안 될 실수다.

그동안 한국은 짧은 패스로 상대의 균형을 허문 뒤 기습적인 롱 패스로 단숨에 활로를 여는 빠른 공격으로 재미를 봤다. 이 전술은 이미 가나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해결사 김민우도 상대 수비의 강한 압박에 시달릴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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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감독이 어떤 공격 루트를 개척할지도 관심이다. 카메룬전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독일전부터 벤치 신세를 진 이승렬(서울)과 조영철(니가타)은 축구화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김보경의 빈자리를 그들이 메울 전망이다.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저돌적이고 빠른 카메룬 공격수에게 수차례 찬스를 허용했다. 가나는 지난 1월 아프리카 청소년선수권에서 카메룬을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홍정호(조선대)·김영권(전주대) 등 대학생이 주축을 이룬 한국 포백 라인이 그새 얼마나 성장했는지 지켜볼 일이다.

홍 감독은 “120분을 생각하고 있다”며 연장 혈투를 치르고 휴식일도 짧았던 가나의 약점을 공략하는 체력전을 구상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전을 앞뒀을 때처럼 승부차기 훈련도 했다.

이해준·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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