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신청 부부에 석달간 '생각할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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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르면 내년부터 법원에 이혼을 신청할 경우 3개월간의 숙려(熟慮)기간을 거쳐야 이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법원이 지정한 외부 상담기관에서 이혼상담을 받으면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서울가정법원은 충동적이고 성급한 결정에 의한 이혼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가칭)' 시안을 마련했다고 4일 밝혔다. 법원 측은 법무부 등을 통해 9월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 통과되면 내년 초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시안에 따르면 3개월간의 숙려기간은 협의이혼, 이혼청구 소송 등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는 모든 제도에 적용된다. 이혼상담은 횟수와 상관없이 부부가 함께 3시간을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상담을 거부할 경우 협의이혼을 하는 데 3개월이 걸리게 된다. 소송 절차 없이 당사자가 합의하면 이혼할 수 있는 협의이혼의 경우 지금까지 법원은 신청 당일 또는 다음날 이혼을 허가했다. 전국 법원 중 유일하게 서울가정법원만 지난 3월부터 상담을 받으면 곧바로 이혼을 허가하고, 1주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협의이혼은 전체 이혼의 80%를 차지한다. 시안은 또 미성년(만 20세 미만) 자녀를 둔 부부는 반드시 상담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협의이혼을 신청할 때 양육비를 누가 댈지, 면접교섭권을 얼마나 보장할지 등에 대해 합의한 문서를 함께 제출토록 했다. 면접 교섭권이란 이혼 뒤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을 만나거나 전화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이번 시안은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상진 변호사는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은 상담기관에서 자신들의 개인 사정을 털어놓기를 꺼린다"며 "저소득층의 경우 상담 비용을 마련하는 데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순덕 변호사는 "혼인관계로 막대한 고통을 겪는 부부에게 수개월을 기다리라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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