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유도수사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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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파업 유도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8일째인 27일 사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자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팀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날 김태정 (金泰政) 전 법무장관을 소환한 수사팀은 "실체를 싸고 있는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 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金전장관은 조사를 받으면서 줄곧 착잡한 표정을 보였다고 수사 관계자가 전언. 金전장관은 특히 진형구 (秦炯九) 전 대검 공안부장에 대해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라며 연민에 가까운 심정을 수차례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金전장관은 "조폐창 통폐합 이후 파업대책 보고를 받은 것은 맞지만 파업 유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며 "당시 秦전부장이 파업 전인데도 상당히 중요한 것처럼 설명한 것을 보고 '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한 기억은 난다" 고 술회.

秦전부장은 언론에 이번 사건이 처음 공개된 직후 강희복 (姜熙復) 전 조폐공사 사장을 설득해 입맞추기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에 따르면 秦전부장은 지난 6월초 姜전사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전화로 하면 통화기록이 남을지도 모른다" 며 며칠 후 휴대폰 하나를 姜전사장에게 보냈다는 것. 이후 秦전부장은 10여 차례 일방적으로 姜전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대책을 상의했으나 姜전사장은 원래 갖고 있던 휴대폰과 동시에 울리기도 해 불안감을 느껴 자신의 친구이자 秦전부장의 후배를 통해 휴대폰을 돌려줬다고. 수사본부는 이날 휴대폰을 돌려준 당사자를 소환, 姜전사장의 진술이 사실임을 확인.

이에 앞서 金전장관은 소환 예정시간인 오후 3시 정각 수행원 2명과 함께 검은색 브로엄을 타고 서울지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金전장관은 전날 소환된 秦전부장과 마찬가지로 지하 1층 민원인 출입구를 통해 들어와 일반인과 똑같은 출입 확인절차를 거쳤다.

진한 감색 정장 차림의 金전장관은 만감이 교차하는듯 입을 굳게 다물고 정면만 응시한 채 일체의 질문에 묵묵부답.

수사본부는 金전장관에 대한 예우와 조사방법을 놓고 한때 고심. 결국 조사는 李본부장이 직접 맡고 조사실은 1143호 조사실에 머무르는 秦전부장과 마주치지 않도록 반대쪽으로 멀리 떨어진 1105호 특별조사실을 택했다.

金전장관은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李본부장실에서 30여분간 커피를 마시며 환담. 李본부장이 "제대로 영접 못해 죄송하다. 나와 주셔서 고맙다" 고 말하자 金전장관은 "선배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 고 답변.

검찰총장에 법무장관까지 지낸 검찰 최고위급 간부가 소환된 이날 서초동 서울지검과 건너편 대검 청사는 하루종일 무거운 분위기. 일선 검사들은 "7월 27일은 검치일 (檢恥日) 로 기록될 만하다" 고 냉소적인 모습들을 보였지만 "어쨌든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밝히는 것만이 검찰이 살 길" 이라고 한결같이 강조.

이틀째 조사를 받고 있는 秦전부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혐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姜전사장은 매우 구체적인 부분까지 진술하고 있으며 조기 통폐합과 관련한 秦전부장의 압력에 대해 "독촉받는 느낌이었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유도 사건 일지]

▶6월 7일 =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 "조폐공사 파업 검찰이 유도" 발언

▶8일 = 秦부장 발언 언론공개로 파문 확산 김대중 대통령, 김태정 법무장관 경질.秦부장 직권면직

▶11일 = 민주노총 등 13개 단체, 秦전부장.金전장관.강희복 조폐공사 사장 직권남용 등 혐의 서울지검에 고발

▶7월 20일 = 검찰, 특별수사본부 통한 독자수사 개시 발표

▶21일 = 秦전부장.姜전사장 자택 압수수색

▶23일 = 대검 압수수색, 姜전사장 소환조사

▶26일 = 秦전부장 소환조사, 姜전사장 재소환

▶27일 = 金전장관 소환조사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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