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키공사 심사 건교부 직원 외로운 '로비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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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실로 외로운 투쟁을 벌였습니다. "

건설교통부가 갖고 있던 일괄수주 (턴키) 공사의 심사과정에서 생기는 비리를 막기 위해 지난 97년 심사 권한을 지자체 등 발주처에 넘기는 데 실무 주역으로 참여했던 한 건설공무원의 회고다.

검찰은 현재 경기도 성남 H건설이 94~96년 일괄수주 공사를 따내면서 건교부 등 관련부처 공무원과 대학교수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종전까지는 2주 전에 심사위원 위촉 사실과 날짜를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심사 실시 바로 하루 전날 밤 12시쯤 심사위원 집으로 직접 전화해 위원으로 위촉했습니다. "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업체들이 알게 되면 이들에게 로비가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사도 청사 주변에 있는 호텔이나 청사 지하실에서 했습니다. " 그는 이런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심사권 자체를 발주처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는 주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부임 한달만에 발주처가 지자체인 것은 지자체로 넘겼고, 7개월 뒤에는 공공투자기관에서 발주한 것도 발주처로 이관했다.

처음에는 행정자치부.재정경제부의 협조를 얻어 '행정지시' 로 시행했지만 이 또한 확실하게 법으로 정해두지 않으면 안되다고 판단, 지난해 2월 국가계약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지자체 등으로 권한이 넘어가더라도 같은 비리가 재발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일괄수주 공사 발주가 2백여개가 넘는 지자체로 분산되기 때문에 로비가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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