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는 건 순간이고 타이틀은 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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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박용택(오른쪽)이 25일 롯데와의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채 겸연쩍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OSEN 제공]

2009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막을 내렸지만 LG 트윈스의 ‘타격왕 만들기’에 대한 야구팬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LG 박용택(30)이 타율 3할7푼2리로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그 과정이 스포츠의 기본 덕목인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김재박 감독은 소속 선수 박용택을 타격왕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자 홍성흔(32·롯데)의 도전 기회를 원천 봉쇄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25일 롯데전에서 김 감독은 상대팀 홍성흔에게 고의 4구성 볼넷을 연속 네 차례나 던지게 했다. 당시 홍성흔은 타율 3할7푼2리로 박용택을 2리 차로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홍성흔은 5타석 1타수 무안타 4볼넷에 그쳤고, 박용택은 아예 경기에 나서지 않은 채 타격 1위를 지켰다. 야구팬들은 LG 게시판에 들어와 “LG를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은 잊지 못하겠다” “박용택은 타이틀을 얻은 만큼 일생 최대의 오점도 얻었다” 등의 비난 글을 남겼다. 타격왕 등극이 어려울 듯하자 박용택을 출장시키지 않은 것도 모자라 경쟁 선수의 타격 기회까지 막을 수 있느냐는 항의였다.

롯데의 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는 “어떻게 이런 창피한 작전이 나올 수 있는가. 매우 실망했다”고 꼬집었다. 김 감독은 시즌 최종일인 26일 히어로즈전에 박용택을 내보냈으나 3타수 무안타에 그쳐 타율이 0.374에서 0.372로 떨어지자 이후 경기에서 뺐다. 한 번 더 나와 무안타였으면 타격왕은 홍성흔(0.371)에게 돌아갈 상황이었다. 결국 박용택은 타율 1리 차 타격왕에 오르긴 했지만, 팬들로부터 ‘부끄러운 타격왕’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김재박 감독은 “박용택이 선수 생활에서 몇 번 맞기 힘든 기회를 잡고 있어 도와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팬들은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일”이라는 내용의 항의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이 같은 일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항상 정면 승부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정통한 송재우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팬과 언론의 비난에 구단이 먼저 감독과 선수를 내쳤을 것”이라며 “1984년 삼성 이만수-롯데 홍문종 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팀 순위와도 관련이 있고, 프로 출범 초기에 벌어진 일이다. 25년이나 지난 지금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LG구단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당시 보스턴)의 처신을 새겨야 할 것이라고 야구인들은 충고한다. 윌리엄스는 1941년 시즌 최종일 더블헤더를 앞두고 감독의 결장 배려를 거부하고 경기에 출전, 8타수 6안타로 타율 4할(0.406)을 넘겼다. 경기 전 윌리엄스는 타율 3할9푼9리9모로 당시 계산상 4할이었다. 윌리엄스는 “부끄러운 4할이 아닌 자랑스러운 4할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이긴 것이다. 

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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