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금융소득종합과세 -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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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6, 97년 시행됐다 외환위기로 유보된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한 재도입 시기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올해 안에 재시행도 가능하다고 밝힌 정부 입장에 대해 즉각 시행과 유보를 주장하는 의견을 들어본다.

◇ 현행 분리과세론 중산층만 '바가지 세금'

우리 경제.사회가 성숙단계로 진입하게 됨에 따라 형평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됐으며,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96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가 실시됐다.

그중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그동안 단일세율로 분리과세되던 이자.배당소득을 사업.근로소득 등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해 누진세율로 과세하도록 함으로써 소득계층간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해 공평과세를 통한 조세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유보함으로써 소득계층간 세부담의 형평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세부담 공평 문제에만 국한시켜 예금이자율 9%, 분리과세율 22% (주민세 제외) 를 기준으로 보면, 예금 1억원에서 9백만원의 이자소득을 얻은 사람은 종합과세의 경우 90만원의 세금을 부담하면 되는데, 분리과세의 경우에는 1백98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예금 1백억원에서 9억원의 이자소득을 얻은 사람은 종합과세의 경우 3억4천7백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반면 분리과세의 경우엔 겨우 1억9천8백만원의 세금만 부담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분리과세함으로써 세금의 불공평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이는 중산층 이하의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바가지 씌우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근본적인 불공평을 방치한 상태에서 세금의 다른 공평을 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현재 유보 중인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조속한 부활과 보완을 통해 모든 소득에 대한 철저한 종합.누진과세제도 시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만약 경제사정상 금융소득 종합과세 재실시가 어렵다면 최소한 금융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자료, 즉 지급조서 등을 국세청에 보고토록 해 금융거래상의 명의자를 진실한 소유자로 추정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명의로 행하는 거래에 대해 증여세 과세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아울러 자금세탁 방지법도 제정해야 한다.

서희열 강남대교수.세무학

◇ 소득격차 안줄어…차라리 주식등에 과세강화

96년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시행된후 대규모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됐거나 또는 장롱 속으로 숨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따라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당장 시행해도 경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소득격차는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경제를 악화시키진 않으나 소득격차를 완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자소득의 세율이 현재의 24.2%에서 44%로 증가할 경우, 고소득자들은 포트폴리오의 재배치를 통해 이자소득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부동산.주식.뮤추얼펀드.회원권 구매 등을 통해 자본이득을 추구할 것이다.

누군가가 1백억원의 예금으로부터 8억원의 이자소득을 얻어 1억9천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면, 저축의 상당부분은 세금없는 주식 등으로 흘러가 오히려 이자소득세가 감소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자소득의 한계세율을 20% 이상 높이는데, 이들이 세금을 그대로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자산 재배치에 나설 것이며, 게다가 이러한 노력은 제도권내에서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악화될 우려도 별로 없다.

물론 포트폴리오의 재배치 과정에서 고소득자들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세부담 자체보다는 세부담의 회피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즉 고소득자들은 단기적으로는 높은 이자소득세를 내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엔 절세지식으로 무장될 것이다.

따라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인해 소득격차가 완화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 (緣木求魚)에 불과할 뿐이다.

금융소득세가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금융소득을 넓게 포착하고 누진도를 심하게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보다는 상대적으로 세부담이 낮은 주식소득 및 임대소득을 효과적으로 과세하는 방안에 노력해야겠다.

김정훈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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