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브리핑]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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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99년 상반기는 한국 방송계의 격변기였다. 제도로나 내용으로나 모두 그랬다. 어느 때보다 논란이 많았고, 반목도 극심했다. 이런 분위기는 하반기에도 계속 '불똥' 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제도적 측면이다. 새로운 통합방송법 제정이 상반기 내내 초점의 대상이었다. 일단 지난해 말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진 방송개혁위원회가 활발하게 가동됐다.

2월말에 새 방송법안을 마련했고, 여기에 기초한 여당안도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립의 불씨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각 방송사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일부 방송사 노조들의 입장도 변함이 없다.

방송위원 구성, 공영방송 사장 선임 검증방식, 제작 현업자도 참여하는 편성위원회 구성, MBC 세전 이익의 15%를 방송영상산업 진흥에 돌리는 문제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반면 방송법을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는 공감대는 분야에 관계없이 이미 성숙한 상태라 정치권의 현명한 태도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지난 5년 동안 정치권.방송사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생긴 여러 문제점을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 급변하는 세계방송 환경을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이다.

관계법이 없어 계속 겉돌고 있는 위성방송이 대표적 사례다. 법이 통과되면 국내에서도 케이블.위성TV 등이 경합하는 다채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내용상으론 공익성이 화두였다. 방송의 건전성을 촉구하는 사회 곳곳의 요구에 따라 방송사들은 연초에 드라마 축소.미신 프로 폐지.청소년 오락프로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지난 5월 정기개편에서도 공익성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는 빈약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줄어든 것이 별로 없고, 캠페인성 프로가 성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공익성이 강화됐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IMF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일부 프로에선 흥미본위의 예전 모습이 되살아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즐거움과 지식을 동시에 선사한다는 교양프로를 자처하면서도 결국은 가벼운 웃음만을 자아내는 프로들이 많이 띈다.

방송진흥윈 최영묵 기획팀장은 "연초만 해도 비교적 조용한 내용을 방송했던 TV들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며 "하반기에도 흥미 위주의 오락프로가 늘어날 것 같다" 고 진단한다.

방송사로는 SBS 약진이 돋보인다. KBS와 MBC가 공영성을 표방하며 잠시 주춤하는 사이 SBS는 드라마.오락프로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선전을 기록했다. 때문에 공영과 민영방송에 대한 명확한 위상정립이 하반기에 풀어야할 숙제로 꼽히고 있다.

일본표절 시비가 물 위로 떠오른 것도 주목할 현상.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해왔던 일본프로 모방에 대한 질책과 자성이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MBC 드라마 '청춘' 은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도 입었다.

일본측이 관련자료를 수집하며 대응책도 모색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방송계의 입장정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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