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어린 넋들아…] 소설가 김인숙씨 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 못다핀 어린 넋들아…어른들 죄 용서해다오

난생 처음 엄마.아빠를 떠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세상을 만나러 '캠프' 를 갔던 아이들이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 길이 얼마나 깜깜하고 무서운 길인지를 누가 알까마는 잠시라도 홀로 있지 못하던 아이들 아니었던가.

그것도 커멓게 그은 모습으로…. 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했는지를 아는 아이들이라면 이토록 가슴이 아리지 않을 것이다.

불길이 덮쳐오는 데도 몸을 피하기는커녕 그냥 바닥에 웅크리고 않아 울고 있었다는 수련원 사람들의 얘기를 TV를 통해 전해들으며 나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아빠.선생님을 애타게 불렀을텐데도… 참 무심한 어른들.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면 이토록 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시설물들을 방치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시간 어른들은 어디로 가고 없었던 걸까.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 내 딸이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자기들만의 캠프를 갔던 네살 유치원생 시절이 떠오른다.

떠나는 버스 앞에 모여 다들 조바심을 내면서도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아이들이 의젓하게 자란다는 믿음에 손을 흔들며 작별을 했고 돌아오던 날 얼싸안고 눈물 글썽이며 즐거워했던 기억의 파편들 말이다.

이번 사고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기억을 빼앗아갔다.

아니 어처구니없는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넋을 잃어야 할 뿐이다.

죽어서도 엄마.아빠를 만나지 못하는 처절한 죽음을 당할 줄 그 어느 아이가 생각이라도 했으랴. 삶은 고통이라고들 위안을 하지만 이토록 큰 시련이 닥친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이들이 죽었다…. 그 말을 입에 담기가 차마 겁이 나 귀를 막거나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이 와중에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소식을 들은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는 내 아이를 불러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줄 수가 없구나. 다만 너희들은 무죄고, 너희들의 어미와 아비의 잘못인 것을. 이 세상 어른들의 죄에 대해 사죄하련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아이를 잃은, 스물세명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해야 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유치원 버스를 보며,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란 단복의 행렬을 보며 이 아이들을 잊지못할 것이다.

누굴 미워하고 용서하는 식의 수습책이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망각 같은 단어 자체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정도의 뻔뻔스러움도 용납되지 않을 참혹한 하루, 나는 이렇게 속절없는 글을 쓴다.

소설가 김인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