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비 금지…폭발직전 공직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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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부의 공직자 10대 준수사항과 처우개선 방침에 대한 공무원들의 비판과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원색적인 용어까지 동원한 공직자들의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유인물을 만들어 돌리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정책을 시행하는 공무원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모양새가 점차 험악해지는 인상이다.

그 실태와 대책 등을 짚어본다.

서울 모 경찰서 K씨는 최근 막내아들을 결혼시켰다.

위로 1남1녀는 시내 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줬지만 이번에는 새마을본부에서 운영하는 간이예식장에서 치렀다.

하객이라곤 친척이 대부분에다 서너명의 동료 직원이 전부였다.

축의금도 부인 이름으로 만든 접수대에서 받았다.

K씨는 "아들 결혼에 아버지란 자가 '완전 아웃' 이었다" 며 쓴웃음을 지었다.

"괜한 트집 잡힐까봐 아예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공무원에겐 미풍양속도 시범케이스라는 감찰 앞에서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10대 준수사항이 다 뭡니까. 그건 '높은 분' 들이나 신경쓸 일이지 우리 같은 '아랫것' 에게는 해당사항이 전무 아닙니까. 고생고생해서 키운 아들을 독립시키는 데 친구.선후배가 없다니…. "

그는 "공직자가 된 것을 이번처럼 후회해본 적이 없다" 며 연신 담배만 빨아댔다.

퇴직을 앞둔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도 "전별금이 도대체 뭡니까. 공무원 기강을 잡는다며 하위직 기나 꺾는 방안을 내놓고 대책이라니…. 경조금을 준조세로 인식하게 한 일부 공직자를 빌미삼아 전체 공직자가 정부에 의해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있다" 며 불만을 터뜨렸다.

일선 공무원에게 정부가 내린 10대 준수사항 때문에 공무원 사회가 시끄럽다.

공무원들의 얘기는 한마디로 '탁상공론' 이라는 것. 앞에서는 마지 못해 결의대회에 참석, 각오를 다지는 듯하지만 뒤돌아서서는 한결같이 콧방귀를 뀌어댄다.

10대 준수사항 가운데 정작 일선 공무원에게 해당되는 것은 단 한가지라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의견. 다름아닌 '경조사 고지 금지' 계명이다.

공무원들은 이를 '상부상조 금지' 라고 바꾸어 부른다.

나머지 조항은 일선 공무원에겐 '언감생심 (焉敢生心)' 이라는 반응이다.

호화결혼식이나 골프, 고급의상실 출입 등은 고위층들의 별천지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자신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딸의 결혼을 준비 중인 경찰청의 한 간부는 "그동안 경조사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지출했는데 이젠 그걸 포기해야 할 판" 이라며 혀를 찼다.

경조사 비용은 자신의 경조사에 대비한 사회보험의 성격이 강한 관습이라는 해석이다.

비록 행자부가 경조사 비용 대출 등 보완책을 검토 중이지만 공무원들은 "미풍양속을 돈으로만 따질 일이냐" 며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김기찬.배익준.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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