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인수 ‘역풍’ 효성 주가 하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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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효성에는 악재, 외환은행에는 호재였다. 23일 증시에서는 하이닉스 인수와 관련된 종목들의 희비가 뚜렷하게 엇갈렸다. 전날 단독으로 인수 의향서를 낸 효성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자칫 무리하게 인수했다간 효성의 기업 가치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하이닉스 지분 매각을 주도해 온 외환은행의 주가는 올랐다. 이날 효성은 장을 열자마자 하한가로 추락했다. 효성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풋(put) 주식워런트증권(ELW)은 장중 한때 1000% 이상 뛰기도 했다. 풋 ELW는 미래에 기초자산인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경우 수익을 얻는 상품이다. 효성ITX·진흥기업 등 효성 계열사들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시장 관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담당 기업분석가(애널리스트)나 효성 주식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증권 박대용 연구원은 “효성은 수시로 이뤄지는 기업탐방 때도 추가로 대규모 인수합병(M&A)은 없다고 밝혀 왔다”며 “이번 인수 추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갑작스러운 발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관련 부서에서 고심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효성의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이나 효과에 대해선 일단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효성의 덩치나 재무구조로 볼 때 하이닉스를 인수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투자증권 한승훈 연구원은 “재무구조를 살펴보면 당장 그만한 현금이 없는 데다 마땅히 팔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면서 “부채 수준도 이미 높아 은행에서 빌려오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성사되더라도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증권 박대용 연구원은 “만약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전략적 투자자보다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금호그룹의 사례처럼 투자자들이 상당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고 효성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수가 확정될 경우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HMC증권은 이날 효성의 기업 분석을 당분간 중단하겠다며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등급 없음’으로 바꿨다.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보통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분석 대상 종목에 대해 매수·중립·매도 등의 투자의견을 제시한다.

인수후보에 대해 논란이 일면서 하이닉스의 주가도 전날보다 5.44% 하락했다. 반면 외환은행은 등락 끝에 소폭(0.76%) 올랐다. 시장 관계자들은 하이닉스가 팔리면 외환은행 등 지분을 가진 은행들은 상당한 차익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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