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평씨 2심 재판장, 2년6월로 감형하며 호된 훈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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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으로 전락한 피고인에게 형량을 감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조병현)는 23일 세종증권 인수 청탁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67·사진)씨에게 징역 2년6월 및 추징금 3억원을 선고했다. 1심은 징역 4년에 추징금 5억7000만원을 선고했었다. 공범으로 기소된 정광용(55)씨는 징역 2년에 추징금 13억2760만원을, 그의 형인 화삼(62)씨는 원심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5억60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조 부장은 재판에서 “대통령의 형인 피고인 노건평이 농협 회장과 농협 인수를 반대하는 농림부 관계자들에게 각종 영향력을 행사한 뒤 세종캐피탈로부터 23억여원이란 거액을 받아냈다”며 “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악취가 난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특히 “이 사건은 세종캐피탈의 노회한 상술과 피고인들의 추악한 탐욕이 얽혀 너무 지독한 냄새가 난 나머지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며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의도로 시작됐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또 “피고인 노건평은 동생의 대통령 당선으로 로열패밀리가 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며 “기업인에게서 돈을 받아내 정치인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봉하대군’의 역할을 즐겼다”고 말했다. 따라서 “피고인이 김형진 세종캐피탈 회장을 찾아가 ‘내 돈 내놓으라’고 호통을 친 만큼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조 부장은 그러나 “1심 선고 이후 ‘내가 키웠다’고 자랑하던 동생이 자살했고 이제 술잔이나 기울이며 신세한탄밖에 할 수 없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가 됐다”며 “전직 대통령의 형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1심에서 가중된 형을 받은 만큼 이제 그 가중인자를 벗겨주는 게 당연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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