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베이징회담의 기대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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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해 교전사태는 예정된 남북차관급 회담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북측과 사전 합의된 당국간 대화의 정례화는 향후 '대화있는 남북관계' 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심상치 않은 정세변화는 회담 재개 자체가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 관계에로의 전환 및 냉전구조 해체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평가가 성급함을 보여준다.

정부는 그간의 예비접촉을 통해 향후 남북대화 전략으로서 이산가족문제해결 가시화.당국간 대화분위기 조성.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및 남북관계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같은 가설적인 그림은 단기적으로 그 목표를 이루긴 어렵고 작은 것부터, 그리고 가시화될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시돼야 하며, 현단계에서는 부분적이나마 대화분위기만 개선돼도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커다란 초석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반도문제는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북.미 양자관계로 전환됐다.

정부는 다시 '당사자 관계' 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으나 현 국면에서 남북대화 정례화가 국제화된 한반도 문제를 남북당사자 문제로 환원하리라고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북은 체제보장 및 식량난 해소 등 당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북.미.일 관계와 대남 (對南) 양동접근 (two track approach) 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남한정부 배제 (通美封南) 전략을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용할 것이며 서해 사태와 같은 '선택적 긴장' 을 지속적으로 조성함으로써 대미 (對美) 교섭력을 강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의 기회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둘째, 북의 초미의 관심은 체제안정을 위해 미.일과의 관계개선 노력과 함께 중.러와 새로운 우호관계 재확인을 통해 포용정책 지지라는 남한의 4강 순방정상외교를 퇴색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근 북.중 우호관계의 재확인 (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중국 방문) , 그리고 북.러 우호조약 체결 (7월 예정) 과 같은 과거 북방 삼각의 공동보조 추이는 주목해야 한다.

셋째, 페리 특사의 대북 제안과 관련해 한.미.일의 포괄협상안에 대한 이해의 일치는 총론적인 것이며 각론적으로는 핵과 미사일 개발문제, 그리고 남북관계개선 등 3국 각자의 관심사항의 중심적 비중은 다르다는 사실을 북은 향후 대미.대남교섭의 지렛대로 십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환경으로서 비록 북은 '자립의 이데올로기' 를 구호로 주장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경제운영체제에서 벗어난 장마당.농민시장 등 비공식적인 경제관계들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의 이같은 사회적 현상은 북한 주민 생활보장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더욱 가중돼 실질적 측면에서 남북경제협력의 확대를 더욱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북이 서해 교전사태와 관련, 접촉금지지역을 '평양' 으로만 국한해 경협은 하겠다는 의사를 비추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차관급회담에서의 우리 전략적 시각은 첫째, 인내심을 갖고 베이징 (北京) 회담이 꾸준히 향후 고위급 남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 회담' 이 되도록 유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는 과제부터 제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6월 12일자 북한 중앙통신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난으로서 "햇볕정책이란 남조선의 썩어빠진 반인민적 식민지제도를 북반부에 연장하겠다는 검은 속셈" 운운 등으로 보아 북은 남의 햇볕정책을 반북 (反北) 대결정책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이제는 정경분리니 상호주의니 하는 수사 (修辭) 의 기교는 버리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좀 더 확고한 태도의 견지가 요구된다.

셋째,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서는 초보단계로서 선택된 이산가족의 상봉만이 아니라 상호 생사확인에 따라 포괄적 편지교환 등이 우선시돼야 한다.

국군포로와 납북어민 등의 송환문제 등도 동시에 제기됨이 바람직하다.

넷째, 남북기본합의서 이행방안에 대한 문제는 상호간에 제기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 경우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단기적으로 유도하는 정책보다 현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

하지만 서해교전을 야기한 북방한계선 (NLL) 문제가 제기될 경우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의 후속조치로 채택된 '불가침부문 부속서' 에서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 는 합의를 주지시키고 북의 대남정책에서의 힘의 논리를 강력히 경고해야 할 것이다.

연하청 명지대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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