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기택 '우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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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허공 속에 발이 푹푹 빠진다

허공에서 허우적 발을 빼며 걷지만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기댈 무게가 없다는 것은

걸어온 만큼의 거리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나는 여러번 넘어졌는지 모른다

지금은 쓰러져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거나

인력에 끌려 어느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자국 발자국이 보인다

뒤꿈치에서 퉁겨오르는

발걸음의 힘찬 울림을 듣고 싶다

내가 걸어온

길고 삐뚤삐뚤한 길이 보고싶다

- 김기택 (金基澤.42) '우주인'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 눈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그 눈으로 사람을 보는 일을 놔버린 일이 없다.

실로 10년 개근의 관찰이 여기 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통해 삶과 죽음을 새겨내는 나머지 우주인의 그 무중력 상태를 통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검증하고 있다.

시인이기에 으레 그래야 하는 애수 따위, 섣부른 사랑 따위가 아닌 현실에서의 연금술이 합법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밤중 무덤에 꽂힌 벼락에도 불구하고 그냥 누워있는 해골도 노래하기를 바란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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