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소년통해 惡의 내면 살피기-영화'푸줏간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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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는 14세 어린 소년에게 특별상을 안겼다. 영화제 역사상 전무한 일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달리 피할 길이 없었다. 마치 깨소금을 뿌려 놓은 듯 얼굴에 주근깨 투성이인 이 영광의 사내아이는 이몬 오웬이었다. 닐 조단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푸줏간 소년' 의 '악동소년' 프랜시가 바로 그였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오웬의 '것' 이다. 천연덕스럽게 연기의 큰 물줄기를 타고 굽이치는 전율의 드라마는 다 그로부터 비롯되고 또 그에게서 맺는다. 광기의 천재성이랄까. 조단 감독조차 " '푸줏간 소년' 은 그 (이몬 오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 그의 연기세계로 들어가는 데는 섬뜩한 '잔혹의 문' 을 거쳐야 한다. 소외된 자아가 분출해 내는 광기의 폭력성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소년의 태연한 행동에 기가 찬다) 이 몸서리치게 만든다.

피날레에서 자신을 능멸한 누젠트 부인을 난도질해서 살해하는 장면은 마치 성악설의 '악몽' 을 확인하는 듯한 충격이다.

이 영화에서 프랜시가 '난도질' 하는 것은 소외다. 집단 따돌림, 시쳇말로 '왕따' 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프랜시가 집착하는 것은 친구의 변치않는 우정이자 이웃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에게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것은 집단 멸시였고 냉대였다.

이웃은 '어깨' 를 고용해 프랜시의 목숨을 위협했고 수도원의 한 목사는 그를 '노리개' 로 삼아 성애 (性愛) 를 즐기려 들었다.

마침내 프랜시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조에게서 조차 버림받자 조의 엄마인 누젠트 부인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누젠트 부인은 '공산당보다도 더 악랄한 위협 덩어리이자 가장 못된 외계인' 이었던 것.

'크라잉 게임' '뱀파이어와와 인터뷰' 등의 화제작을 낸 조단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기괴한 설정과 영상미를 이 영화에서도 맘껏 과시한다.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프랜시의 내면을 탐색해 드러내는 방법은 아주 효과적. 간간이 등장하는 핵폭발 장면과 TV의 출현, '존 웨인' 의 서부극, 란제리를 걸친 성모 마리아와 '파리인간' 등은 현실의 혼돈과 미지로 향한 동경을 가치중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기재들이다.

그러나 소년의 일탈을 쉴새 없이 '과도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오히려 "저건 아닌데" "저럴 수는 없지" 라는 각성을 촉발하는 것이 이 영화의 더 큰 매력이다.

브레히트적인 이화 (離化) 효과로 인해 우리는 이 영화가 소년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 본 세기말 한편의 우화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는 이른바 '조단사단' 의 등장이 눈에 띈다. 음악을 맡은 엘리엇 골든탈이 대표적. 그는 조단 감독의 '마이클 콜린스' 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인물. 이번에도 세계적인 여성 팝싱어 시너드 오코너를 기용, 주제곡 (The Butcher Boy) 등을 부르게 해 사운드트랙 음반을 함께 냈다. 19일 개봉.

정재왈 기자

작품성★★★☆ 오락성★★★☆

*★5개 만점,☆은 반점 (중앙일보 영화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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