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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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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에는 유명 백화점이 참 많다. 필자는 백화점에 자주 가지 않지만, 거기에 가면 참 기분이 좋다. 싱글벙글 웃으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종업원, 몇 번씩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고 그냥 가도 미소 짓는 종업원. 나도 때때로 그곳에 가면 왕이 된다.

손님은 왕이니까 그럼 내가 그 백화점의 주인인가? 나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럼 그 백화점의 주인은 누구일까? 매장에서 친절하게 설명하던 종업원일까. 제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체 대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점포를 빌려서 영업을 하는 점포주일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주인일까. 바로 그 백화점의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이 주인이고, 법상으로는 이사회가 분명히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질적인 주인은 최대 주주 한 명이다.

그럼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학은 크게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으로 구분된다. 국공립대학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설립 주체이니 당연히 그들이 주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수들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주인이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교수들은 자신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이것은 명백한 착각이다.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법적인 주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사립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법적으로는 당연히 설립 또는 경영 주체인 이사회와 이사회를 대표하는 이사장이다. 그런데 사립학교법상 그 이사회의 4분의 1은 설립자나 경영자와 무관한 대학 내 교원·직원·학생들이 추천한 개방이사로 채워야 하고 교수·직원·학생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가 학사 운영의 모든 사항을 심의하고 법인 경영까지 자문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 교수만으로 구성·운영되는 인사위원회에서는 교원 임면에 관한 심의권도 행사한다. 여기에 다수의 구성원이 이사회를 무시하고 불법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관할 청은 학사 파행을 이유로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영체제하에서 이사장이나 이사회가 주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잘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학교 경영자로서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여러 사업을 벌이다 보면 더러는 잘못도 하게 된다. 그런데 대학의 주인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교직원이나 학생들은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이것을 빌미로 사학 법인의 이사장을 파렴치범으로 매도하면서 경영권을 내놓으라고 날을 세운다.

법인과 교수·직원·학생이 다 주인의식을 갖고 한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다면 학교 발전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주인이라며 서로 자기 입맛에 맞는 주장만 하면 ‘사공이 많은 배’처럼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아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기 때문에 배가 제자리에서 맴돌게 된다. 주인이 확실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이 패를 갈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어떤 대학처럼 될 수 있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송호열 전 서원대 총장 자유교육연합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