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고 끝에 북·미 양자대화 방침을 발표했던 미국 정부가 북·미 간 만남은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기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북·미 대화 시기와 형식이 곧 가시화돼도, 이 대화는 6자회담과 분리된 별도의 프로세스가 아니며 6자회담 대체물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워싱턴을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이날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의 대담 자리에서 “북한은 북·미 양자대화를 거쳐 6자회담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도 보즈워스 대표의 평양 방문 때 북측의 카운터파트가 누가 될 것인지를 포함해 북·미 간에 다양한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첫 협상을 앞두고 북측에 다시 한번 6자회담 포기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북·미 대화 발표 이후 미 언론들이 ‘오바마 정부의 극적인 정책전환’이라고 해석하고, 미국 내 여론도 북·미 협상에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한 걸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미 정부는 곤혹스러워한다”며 “이를 감안해 미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5일 ‘김정일, 또 승리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오바마 정부가 자신의 외교를 훼손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WSJ은 ▶북·미 양자대화는 6자회담의 즉각적인 재개가 아니라 죽음을 가져올 것이 확실하고 ▶ 미국이 한국·일본 등 우방과 구축한 연합전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으며 ▶ 권력세습을 준비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내부 지배력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낸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14일 한반도 평화포럼 세미나에서 배포한 특별 연설문에서 대북정책과 관련, “과거의 경험은 북한에 대한 ‘선의의 무시 전략’이 실행 가능한 선택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며 “미국은 북핵문제의 악순환을 중단시키는 데 필요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지만 북한을 상대하는 데 방어적인 자세로 위축돼서는 안 된다”며 북·미 대화 지지입장을 밝혔다. 그의 의견은 대북정책에 관한 민주당의 기본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