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벤처 기업인으로 변신한 도핑검사 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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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자육상 100m 세계신기록. 9초79.'

1988년 9월 27일 벤 존슨(캐나다)은 칼 루이스(미국)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서울올림픽 최대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틀 뒤 이보다 더 놀랄 만한 뉴스가 터져나온다.'벤 존슨, 금메달 박탈.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검출.'

100m를 달리는 데 20초 이상 걸리는 중년의 한 한국 화학자가 이 사건 하나로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당시 도핑 컨트롤센터 책임자였던 박종세(61)씨다.

100m 결승이 벌어진 날 밤. 그는 도핑 컨트롤센터 직원으로부터 "세건의 양성(금지약물 검출)이 나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재검사를 실시한 뒤 다음날 아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학전문가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존슨은 처음에는 "드링크를 경기장 바닥에 놓았는데 경기 직전 누군가가 이 병에 약물을 넣은 것 같다"고 버텼고, 6개월 뒤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을 실토했다. 존슨은 지난달 11일 캐나다 CTV에 출연해서는 "당시 서울에 있던 모든 선수가 약물을 복용했다. 나는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아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이렇게 반박한다.

"한때 벤 존슨 사건이 미국의 음모라는 설도 퍼졌지만 사실무근입니다. 다만 당시 서울에 왔던 선수들이 한국의 도핑검사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후 세번의 올림픽이 더 열렸지만 도핑 적발 건수는 서울올림픽 때가 가장 많았거든요."

박씨는 벤 존슨 외에 영국의 육상선수 클리퍼드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무죄'판정을 받았다. 클리퍼드는 "인삼정제를 복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검사 결과 인삼정제엔 소량의 흥분제가 들어 있었다.

"청문회에선 클리퍼드가 이 사실을 모르고 복용한 것으로 인정해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금지약물이 검출되면 무조건 선수 책임으로 판정하지요. 그래서 우리 선수들이 복용하는 보약에 금지 약물(170가지)이 포함돼 있는지 사전에 검사하고 있습니다."

서울올림픽 이전까지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교수로 일했던 박씨는 올림픽이 끝난 뒤 국내에서 학자.관료로 승승장구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청 초대 청장에 올랐다. 그러다 수뢰 혐의로 99년 1월 식의약청장에서 물러난 뒤 옥살이까지 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서울지법.고법 무죄판결→대법원의 원심 파기→서울고법의 유죄판결을 받은 박씨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바이오 벤처기업 랩 프런티어의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2000년 9월 자본금 1억원, 직원 10명으로 시작해 지난해 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엔 105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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