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한국엄마에 다국적 기업 '조심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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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본 고베시의 P&G동북아지사 직원들은 자사 로비에 있는 주가전광판을 지날 때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이 몇 달째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 지난해 말 출시한 신제품 '팸퍼스수퍼프리미엄' (기저귀) 의 시장 점유율이 배로 늘어나 업계 4위에서 1위로 수직상승한 데 따른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피부발진 예방을 위해 기저귀 표면에 로션을 발라 피부를 보호하는 신기술이 도입된 이 제품은 미.유럽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일본보다 6개월이나 늦은 다음달 1일에야 국내에 출시된다. 진작에 일본시장까지 평정하고도 뒤늦게 한국시장 '상륙' 을 시도한 데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

국내에 진출한 후 10년 동안 미.유럽에서 성공한 신제품을 앞세워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연간 4천억원의 시장 중 7%만 차지하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

앨가이어 (40) 지사장은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도 검증을 끝낸 신제품이지만 한국 엄마들이 통풍.촉감.편의성 등을 워낙 꼼꼼하게 따져 성공을 자신하기는 이르다" 고 말했다.

신기술을 선도하며 기저귀 역사를 바꿔왔다고 자부하는 P&G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P&G는 이 때문에 신상품엔 두 가지 전략을 덧붙였다. 먼저 97년 합병한 쌍용제지의 대표 브랜드 '큐티' 의 인지도를 살려 '큐티수퍼프리미엄' 으로 이름을 정했다. 이는 P&G 브랜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

미국 본사에서도 자사 브랜드를 쓰지 않는데 대해 난감해 했지만 까다로운 시장 특수성을 인정해 브랜드 수정에 동의했다. 가격도 기존 제품보다 평균 5% 내렸다.

이와 함께 한국 엄마들의 특성을 연구해 중장기적으로 신상품 개발의 아이디어 뱅크로 삼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한국 엄마들은 전통적으로 면 기저귀를 선호해 비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서구 엄마들과는 달리 기능 외에 디자인.색깔 등에 훨씬 까다롭다는 것.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깐깐한 한국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시장에서 통한다는 분석이다. P&G는 이를 위해 연간 투자규모를 8백50억원에서 1천2백억원으로 40% 끌어올리는 한편 쌍용제지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고베 =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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