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파업 왜 잦았나] 노사관계 '새틀'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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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연례행사가 돼온 지하철의 노사 대립이 성숙하지 못한 노.사관계에서 비롯됐다고 할 때 이번 만큼은 새틀을 짜는 분명한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7년 노조 창립후 지하철의 역사는 노조의 강경투쟁 일변도 전략에 사측이 원칙없는 양보를 계속해온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만해도 모두 14번. 한해에 한번은 거르지 않고 파업을 결의했다.

15년 동안 실제로 파업에 들어간 것은 이번을 포함해 일곱번이나 된다.

이같은 노사대결의 일차 원인은 상호 불신에 기인한다.

주인없는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초창기부터 지하철공사 경영진에는 군출신 등 비전문가가 낙하산식으로 임명됐고 어김없이 노조의 반발을 불렀다.

낙하산 사장이나 관선시장은 문제가 생겨도 근본적인 해결은 제쳐두고 '우선 급한 불이라도 끄고보자' 는 식으로 일관, 원칙없는 양보를 거듭했다.

그 결과 ▶어느 나라에도 없는 비능률적인 4조3교대 근무제 ▶법정 기준 (노조원수 대비 11명) 을 초과한 25명의 노조전임자 ▶근무보다 우선하는 비전임자의 조합활동 보장 등 여타 사업장에서는 꿈도 꿀수 없는 파격적인 조항들이 양산됐다.

물론 이번에는 정부나 서울시 공사가 한목소리로 "모든 것을 원칙대로 처리하겠다" 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인사.예산편성 및 승인을 놓고 서울시의 간섭도 지나쳐 공사 경영진으로서도 책임경영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다.

이번에도 당초 서울시의 구조조정안을 놓고 노사가 평화적인 협상을 벌였으나 쟁점현안 마다 노사가 견해차이를 보여도 공사는 서울시의 지침 테두리 안에서 교과서적인 답변으로만 일관했다.

공사의 자율권이 없다보니 타협과 절충의 여지는 애초부터 가로막혔던 것이다.

도시연대 최정한 (崔廷漢) 사무총장은 "공사는 서울시의 대리인 역할에서 벗어나 경영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노조는 시민의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무를 명확히 인식할 때 새로운 노사관계는 출발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도 노조를 힘의 논리로만 누르려고 하지말고 산적한 문제 해결에 자기반성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노사문제가 난항을 겪을 때마다 섣불리 '해결사' 를 자처한 정치권의 단견 (短見) 도 노사문제를 왜곡시켜온 장본인으로 꼽힌다.

공사가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원을 규정대로 징계해도 노조는 매번 파업 으름장을 놓으며 다음번 협상때 해고자 복직을 파업철회의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왔다.

이때마다 정치권은 사측의 일방적인 양보를 종용했다.

고유권리라고 하지만 '파업카드' 를 남용해온 노조의 무책임한 '벼랑끝 전술' 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번 파업에서도 노조는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했으나 지하철이 하루 10억원의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노조만 단 한명의 인력과 한푼의 고통분담도 할수 없다는 것은 시민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결국 파업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노조창립 12년에 걸맞게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게 시민사회의 주문이다.

YMCA 신종원 (辛鍾元) 시민사회개발부장은 "새로운 노사관계정립 과정에 공공서비스의 소비자이면서도 주인인 시민의 참여를 보장할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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