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민노총 '지도부 퇴진' 들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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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노총이 95년 출범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1천4백20개 노조, 49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에는 자동차.조선 등의 대규모 사업장과 전교조, 서울.부산 지하철노조 등 '움직이는' 노조가 대거 포함돼 있다.

더구나 이들 노조는 대부분 87년 '민주항쟁'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강성 (强性) 조직이라 노동현장은 언제나 이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올해 파업에선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 실패, 한국통신의 파업 유보 등으로 민주노총 지도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26일 밤부터 서울 명동성당에서 계속된 자체토론에선 지도부 책임론이 튀어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 단축운행이 시작될 때 시민정서를 감안해 파업을 일시 중단해 여론을 끌어안고 정부와 협상에 나섰어야 했는데 강경일변도로 나가다 결국 협상 제의도 거절당하고 사기만 떨어뜨렸다는 불만이다.

지하철 노조의 파업중단 결정에도 민주노총 지도부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27일에도 이갑용 (李甲用) 위원장은 "대우계열사 노조 등 계획된 파업을 계속한다" 고 밝혔지만 염성태 대우그룹 노조협의회 의장은 "정부의 구조조정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며 의미를 달리했다.

공공연맹측은 "석치순 지하철노조 위원장이 사퇴하고 김명희 2대 지하철 노조위원장 직대체제로 간다" 고 밝혔지만 石위원장은 향후 서울시와의 협상은 자신이 그대로 맡는다고 밝히는 등 내부 분위기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현 지도부로선 상황을 수습할 묘안이 없다.

지난 2월 노사정위 탈퇴 때부터 정부와의 일전을 준비했던 지도부로서는 이제 와서 '협상'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명분이 없다.

李위원장은 27일 "이 정권은 더 이상 국민의 정부가 아니며 노사정위 복귀는 말도 안된다" 고 정치투쟁을 강조했다.

정부도 지금까지 이면에선 협상을 종용했던 전례와 다르게 '불법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을 협상의 상대로 삼지 않겠다' 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도부 책임론을 잠재우고 투쟁방향을 바꿀 명분을 만들려면 위원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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