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함께 성장한 배우들의 존재감, 바로 이게 오리지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1호 04면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매번 다른 라이브 뮤지컬 무대에서 오리지널리티를 판단하는 잣대는 과연 무엇이 돼야 할까? 연출가·안무가 등 초연을 직접 만든 이들의 참가 여부가 기본적인 요소가 되겠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배역을 처음부터 함께 만든 배우에 의해 비로소 ‘오리지널리티’를 부여받지 않을까?

뮤지컬 '렌트', 20일까지 KBS홀

‘노트르담 드 파리’ ‘돈 주앙’
.‘십계’ ‘로미오 앤 줄리엣’ 같은 프렌치 뮤지컬이나 지난달 내한 공연을 한 이탈리아 뮤지컬 ‘일 삐노끼오’에 이어 한국 뮤지컬 공연사에서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충실한 공연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13년 전 브로드웨이 초연 무대를 장식했고, 음반 녹음에도 참가했으며, 2005년 영화에도 주연을 맡았던 바로 그 오리지널 배우 애덤 파스칼과 앤서니 랩이 참가한 ‘렌트’(20일까지 KBS홀)가 바로 그것이다. 8일 KBS홀에서 시작된 ‘렌트’ 오리지널 캐스트 투어 오프닝 무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미 첫 등장부터 살아 있는 ‘렌트’였다.

‘렌트’는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라이선스 초연 이후 그동안 총 여섯 차례나 소개된 인기 레퍼토리다. 에이즈와 마약이 창궐하던 이스트빌리지에 사는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들의 정서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뉴욕을 떠난 다른 곳에선 대체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리 배우들도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마크와 로저를 모두 맡았던 이건명을 비롯해 남경주·최정원·이희정·조승우·성기윤·김영주·정선아·최민철 등 현재 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배우가 모두 ‘렌트’를 거쳤다.

단일 세트로 이뤄진 무대 위에서 라이브 밴드가 배우들과 공존하는 원작의 모던한 연출은 한국 공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2000~2002년)에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객석에 전달되기엔 지나치게 넓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토월극장 같은 대극장에서 공연이 이뤄져야 했다. 2004년 연강홀, 2007년 대학로 이다극장에서의 재공연에서는 작품과 극장 규모는 일치했지만 서서히 낡은 소재가 돼 가고 있었다.

2008년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렌트’의 폐막을 알리는 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젊은 연출가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새로운 목표가 됐다. 가령 올해 초 런던에서는 배우가 연주도 담당하는 이른바 액터-뮤지션 스타일의 새로운 ‘렌트’가 나왔다.

반면 가장 최근의 라이선스 재공연인 올해 초 한전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은 신인 배우들로 대거 채워졌음에도 정작 새로운 해석과 도전의식이 부족하고 기존의 스타일에 머물러 아쉬움을 줬다.

하지만 이번 오리지널 투어 공연은 달랐다. 13년 전의 낡은 초연 연출을 유지하면서도 ‘그 시절의 그 배우들’을 비롯해 역량 있는 얼굴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도 이 무대는 축제의 장이 됐다. 브로드웨이 초연 연출가 마이클 그레이프는 원작의 힘을 유지하면서도 투어에 맞게 보다 속도감 있는 연출을 보여 줬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작품과 함께 성장해 온 애덤 파스칼과 앤서니 랩의 존재감은 극의 두 중심축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듀엣 ‘What You Own’에서는 과거 그 어느 공연보다 열정이 느껴졌다.

톰 콜린스를 연기한 마이클 매켈로이나 모린을 연기한 니컬렛 하트의 연기력도 손에 꼽을 만했다. 게다가 흑인·백인·히스패닉·아시안이 고루 섞인 앙상블 조합은 그 자체가 이미 이스트빌리지의 한 블록을 그대로 떼어 놓은 것 같았다.단순히 외국 배우가 출연해 원어로 노래하고 오리지널 연출을 이어받은 협력 연출가가 내한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오리지널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죄악이다. 그냥 원어 공연이라고 하면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