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브래드 리틀, 드라마는 조승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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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호 04면

립싱크 파문과 커버 배우의 예고 없는 출연으로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지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해외 투어팀 공연(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은 가을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이다. VIP석(400석)과 R석(700석)은 90% 이상 팔려 나가 좌석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지킬앤하이드’라는 브랜드 인지도와 브래드 리틀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합작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리지널 지킬 vs 한국의 지킬, 누가 더 잘했나

‘지킬앤하이드’는 주지하다시피 주연 남자배우의 역량이 작품의 퀄리티를 좌우한다. 한국 프로덕션의 ‘지킬앤하이드’와 해외 투어팀 공연을 둘 다 본 사람이라면, 양측의 주인공 조승우와 브래드 리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터. 그래서 뮤지컬 관계자 4명의 의견을 종합해 봤다. 조승우와 브래드 리틀 중 누가 과연 더 잘했는지. 분석을 세분화하기 위해 가창력·전달력·연기 변화 능력·무대 장악력 등 4가지 요소를 비교 문항으로 했다.

결과는? 박빙이었지만 근소하나마 ‘한국의 지킬’ 조승우의 판정승이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조승우는 브래드 리틀에 비해 투수의 기본인 스피드에선 조금 떨어지지만, 제구력은 엇비슷했고 구질의 다양함·위기 대처 능력·수비력 등에선 앞선다는 평가였다.

1. 가창력 조승우〈 브래드 리틀
브래드 리틀의 4대0 압승이었다.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정확한 음정, 안정적인 톤 유지 등 리틀은 기본기가 탄탄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순간엔 감정을 단단히 뭉쳐내 폭발시켰다.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 대표적인 예. 처음엔 아늑하게 객석을 끌어당기다, 마지막 고음을 치고 올라갈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전율’이란 단어가 아깝지 않았다. 이유리 교수는 ‘풍부한 성량’에 방점을 찍었고, 김아형 기자는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음역대를 높이 평가했다. 원종원 교수는 “얼핏 ‘팬텀’의 그림자가 비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록 브래드 리틀보단 조금 떨어지지만 조승우에 대한 호평도 있었다. 조승우의 장점은 “노래에 드라마를 입힌다”는 점. 쩌렁쩌렁한 발성은 아니지만 포인트를 콕콕 찍어대 다이내믹함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2. 전달력 조승우=브래드 리틀
대사나 가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발음하고 전달하는가를 비교했다. 막상막하였다. 두 명은 비슷하다고 했고, 다른 두 명은 양쪽으로 갈렸다. 스타일은 조금 달랐다. 리틀이 차분하고 설득적이었다면, 조승우는 디테일에 강했다. 지킬에 대한 해석도 둘은 조금 달랐다. 조승우는 외골수에 가까울 만큼 정도를 걸어가는, 결벽증의 지킬을 표현했다면 리틀은 술집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 호스티스에게 작업을 걸기도 하는, 조금은 인간적인 면모에 비중을 두었다.

3. 연기 변화 능력 조승우 〉브래드 리틀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지킬과 하이드, 양쪽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가를 비교했다. 조승우의 3대0 완승이었다. 하이드의 악함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선 지킬을 연기할 때의 선함이 빛나야 할 터. 이 대목에서 조승우의 깨끗한 마스크는 후한 점수를 받을 만했다. 게다가 하이드로 변신 시 관객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만큼의 금속성 목소리는 ‘변신의 귀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지킬과 하이드를 순간적으로 여러 번 바꿔가며 불러야 하는 노래 ‘대결(Confrontation)’에서 조승우의 승부수는 스피드였다. 긴박한 전환, 정확한 호흡, 절묘한 타이밍으로 객석을 쭉 빨아들였다.

4. 무대 장악력 조승우 〉 브래드 리틀
주사를 맞은 조승우는 잠시 후 바닥에 쓰러졌고 뒹굴었다. 위쪽에 매달린 거울, 거기에 머리가 풀어 헤쳐진 괴물이 보였다. 하이드였다. 이어진 노래 ‘얼라이브(Alive)’를 부르는 조승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덩치는 여전히 작았지만 어깨를 세운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무대 앞쪽으로 나와 객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싸늘하고 냉혹했다.

그리고 1부 마지막, 성직자를 바닥에 눕히곤 지팡이로 사정없이 내리치며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를 반복한다. 바닥은 삽시간에 불길이 타오르고, 조승우는 무언가 집어삼킬 듯 포효한다.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 망토를 휘날리며 그는 떠나간다. 비릿한 피의 여운이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무대, 관객은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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