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밀레니엄 작가] 2. 美 니컬슨 베이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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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놀라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치밀한 심리묘사로 미국 순수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는 니컬슨 베이커 (42) .유년시절 그의 꿈은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다.

실제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바순을 연주했고 피아노 소나타 작곡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그는 스스로 천성적인 음악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86년 그는 첫 소설 '메자닌' (Mezzanine) 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익명의 한 회사원이 점심시간에 구두를 사오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빌딩을 오르는 짧은 순간의 상념을 얘기한다.

두 번째 작품 '실내 온도' (Room Temperature) 도 6개월 된 딸아이를 품에 안고 창가에 앉은 한 아버지의 생각을 추적한 것. 이처럼 그는 초기작부터 짧은 시간이란 개념을 이용, 단순 소재를 설정한 다음 정신세계의 내밀한 구조를 해부하는데 천재적 기질을 보였다.

그를 일약 화제의 인물로 만든 작품은 폰섹스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복스 (Vox.92년) .미국문단에 격렬한 외설논쟁을 일으키기도 한 이 작품은 미국 동부와 서부에 각기 사는 한 남자와 여자의 단 한 통화의 전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 섹스란 소재를 이용, 단절된 현대인의 사랑과 고독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당시 '애틀란틱 저널' 지는 "그의 작품이 순수문단에서는 성적으로 가장 노골적인 편이지만 그 속에 담긴 따뜻하고 관대한 정신만은 부인할 수 없다" 고 평하고 있다.

'복스' 에 이어 나온 페르마타 (The Fermata.94년) 는 세상을 정지시킬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35살의 노총각이 이를 통해 성적만족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이 작품 역시 포르노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특히 '젤리 모양으로 굳어진 바람' 이나 '옷 표면에 묻어 있는 물방울' 등처럼 시간이 정지된 세계에 대한 묘사는 과히 독보적. 최근작 '노리의 끝없는 이야기' (The Everlasting Story of Nory.문학세계사) 는 아홉살 난 여자아이가 바비인형에게 들려주는 거짓없고 투명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소재상으로는 전작들과 다소 대조적이지만 그의 상상력과 내면읽기의 탁월함은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 살아난다.

현재 국내에는 '노리의…' '복스' '페르마타' (이상 문학세계사)가 번역.소개돼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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