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발 투수진 전멸해 성적 못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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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대구 삼성전에서 김재박(55·사진) LG 감독은 통산 900승 고지를 밟았다.

프로야구 역대 다섯 번째이자 감독 중 최소 시즌(14시즌·김응용 감독과 공동 1위), 최소 경기(1710경기), 최연소(54세11개월) 900승 달성이었다. 당시 LG는 중간순위 2위까지 도약하며 ‘7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꿈에 부풀었다.

9월 6일 서울 잠실 두산전. 김 감독은 통산 1800경기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 역시 프로야구 역대 다섯 번째이자 최연소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날 김 감독은 웃지 못했다. 시즌 종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LG가 최하위권(7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LG 구단에 입성한 김 감독이지만 지금은 절망과 원성만이 그의 귓전을 때리고 있다.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기는커녕 3년 내내 하위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계약 만료를 앞둔 요즘, 그 자신도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기”라고 털어놨다. 10일 대구에서 김 감독과 만났다.

◆우승 청부사에서 하위팀 감독으로

2006년 11월 20일, LG는 현대 사령탑에서 계약 만료로 물러난 김 감독을 영입했다. 3년간 총액 15억5000만원이라는, 당시 역대 감독 최고 대우를 해주고서였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1년간 현대에서 여덟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 네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 낸 김 감독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김 감독도 “3년 내에 꼭 우승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내놨다.

하지만 김 감독의 LG는 3년간 5위-8위-7위(11일 현재)에 그쳤다. 김 감독은 “LG 감독으로 와 보니 밖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성적을 낼 만한 팀 밸런스가 갖춰지지 않았다. 1군과 2군의 기량 차가 컸고, 선수층도 넓지 않았다. 이병규가 일본으로 진출한 후였고, 팀을 이끌어야 할 베테랑들이 모두 팀을 떠난 상태였다. 실력 자체가 현대와 큰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LG 구단은 “김 감독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줬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코칭스태프는 물론 프런트까지 김 감독과 현대에서 호흡을 맞추던 사람들로 채워 줬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현대 시절만큼은 못 하지만 LG 구단의 지원도 좋았다”고 말했다.

◆“올해 해볼 만하다고 봤는데…”

김 감독은 “팀의 리빌딩과 성적을 동시에 신경 써야 했다. 결국 성적을 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소득이 있었다”고 지난 3년을 자평했다. 그러나 구단 생각은 다르다. 구단 고위 관계자는 “올해는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인 이진영과 정성훈까지 영입했다. 성적을 낼 만한 전력을 구축했다고 봤다”고 말해 김 감독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 감독은 “야수 쪽에서는 짜임새가 생겼다. 사실 ‘올해엔 해 볼 만하겠다’는 판단도 섰다”면서도 “그런데 투수진, 특히 선발진이 전멸하면서 팀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불안한 투수진이 부진의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부상이 LG만 당하는 일도 아니고, 주요 선수 부상 때 팀을 꾸려 가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팀 에이스 김광현이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상황에서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온 SK와 대비된다고 말하는 야구인들이 많다.

◆재계약은 구단이 알아서 할 일

올 시즌 LG엔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투수와 포수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고, 2군에서는 선후배 간 야구 방망이 구타 사건이 터졌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프런트도 책임이 있겠지만 현장 최고책임자로서 나도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 그렇긴 한데…”라고 말을 이어 갔다. 사태의 심각성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으로 들렸다. 재계약 문제와 관련, 김 감독은 “3년간 보람도 느꼈다. 어떤 결정이든 받아들이겠다”며 “재계약 여부는 구단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대구=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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