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농산물 보따리상 밀수 인천항 세관 눈감아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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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입국장. 전날 오후 중국 산둥 (山東) 성 웨이하이 (威海) 항을 떠난 페리 웨이둥 (威東) 호가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6백명 승객이 선적했던 짐들을 찾아 다시 꾸리기 시작하면서 세관대 앞은 북새통이 됐다.

부피가 작아 보이게 만드는 작업. 이들 거의 전부가 중국산 참깨와 고춧가루 등을 국내에 밀반입하는 전문 보따리상이다.

때맞춰 대합실 밖에서 기다리던 1백명 가까운 사람들이 각기 손수레를 입국장 안으로 줄줄이 들여보낸다.

반입물을 살 중간수집상들이다.

수레는 승객마다 대여섯개씩 되는 가방.상자들을 싣고 나오기 위한 것. ×사장.람보.김 등 저마다 이름을 적어 아예 주차장에 쌓아두고 사용한다.

10여명에 불과한 일반 여행객이 먼저 빠져나간 뒤 오전 11시쯤부터 이날의 통관절차가 시작됐다.

14개 검색대마다 세관원과 승객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진다.

하지만 검은색 대형 가방들에 담긴 참깨와 고춧가루는 대부분 무사통과다.

한두 뭉텅이 유치당하는 수도 있으나 형식적일 뿐. '1인당 5㎏' 으로 제한한 관세청의 면세통관 규정이 여기에선 휴지조각이다.

7㎏짜리 고춧가루 봉지 12개 (84㎏) 와 참깨 30㎏를 갖고 나온 朴모 (47.인천) 씨는 그런데도 "고추 두봉지, 깨 한말 털렸다" 고 투덜거렸다.

입국장 대합실 밖 주차장. 꽉 들어찬 중간상들의 봉고차.소형 트럭 사이사이에서 통관된 물건을 저울에 달아 중간상에게 넘기는 현금 거래가 시작된다.

어지러이 놓인 저울.손수레.마대자루, 우글대는 사람들의 수선스러운 소리…. 주차장은 오후 늦게까지 시끌벅적한 장터다.

보따리 군단의 중국산 참깨.고춧가루 불법 반입 현장.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벌건 대낮에 세관원 눈 앞에서 날마다 공공연히 벌어지는 풍경이다.

분명히 밀수 (密輸) 지만 '몰래' 는 아니다.

인천항이 뻥 뚫린 것이다.

부산 등 남해를 통한 컨테이너 대량 밀수가 집중 단속되고, IMF 관리체제 이후 보따리상들이 부쩍 늘면서 지난해 중반부터 인천항이 반입의 제1통로가 됐다는 게 참깨 유통업계의 얘기다.

현지에서 ㎏당 9위안 (약 1천2백30원) 하는 참깨는 4천5백원, ㎏당 16위안 (약 2천1백90원) 인 고춧가루는 7천5백원선에 중간상에게 팔린다.

현지 가격의 세배 이상을 받는 짭짤한 장사다.

도매를 거친 국내 소비자 가격은 참깨 6천6백원, 고춧가루 9천2백원. 왕복 뱃삯 (24만2천2백원).식대 등 경비를 빼고 이날 43만원을 챙긴 朴씨는 "한달에 열두번쯤 배를 탄다.

뱃삯조차 못건지는 날도 있긴 하지만 월평균 삼사백만원 벌이는 된다" 며 세관원에게 뇌물주는 방법까지 귀띔했다.

특히 국내 생산량이 턱없이 적은 참깨의 불법 반입은 정식 수입을 통한 유통시장을 무너뜨리고 있다.

업계에선 웨이하이. 칭다오 (靑島). 다롄 (大連). 단둥 (丹東). 톈진 (天津). 상하이 (上海)에서 매주 12편의 페리를 통해 불법 반입되는 참깨가 연간 1만t 정도인 것으로 추산한다.

중국 농산물 밀반입 문제와 관련, 인천세관 김우규 (金宇圭) 감시국장은 "5㎏ 면세통관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일부 있을 것" 이라며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관세청 본부에 개선을 요청했으나 농민단체를 의식한 농림부가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金국장은 세관원들의 뇌물수수 문제에 대해서는 "감사실에서 매일 현장에 나가 불법행위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 며 "일부 돈받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나 문제가 드러나면 엄정 조치할 것" 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비싼 참기름값을 떨어뜨리고 불법 반입을 막아 유통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자유화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획취재팀 김석현.신동재.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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