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정부 “큰 비 안 왔는데 기습방류 납득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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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댐 무단 방류와 관련한 정부의 7일 오전 대북 전통문에 북한은 6시간 만인 오후 5시 회신을 보내왔다. 댐의 수위 상승으로 인한 긴급 방류였다는 점과 앞으로는 사전통보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임진강 북측 수역의 다른 댐과 달리 수문이 설치된 황강댐이 이번 참사의 진원지였다는 점도 밝힌 셈이다. 북한이 이처럼 신속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임진강 방류 사태가 있었던 2005년 9월엔 “방류 계획을 통보할 수 없다”고 주장해 우리 측을 난감하게 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전통문을 보내면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실종된 원인을 제공한 데 대해 사과나 유감 표명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즉각적인 입장 표명은 무엇보다 ‘북한판 수공(水攻)’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된 남한 내 대북 여론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대남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돌발악재가 된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원인이 북한의 방류였던 점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명피해에 대해 아무런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다는 점에서나 향후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될 전망이다. 또 북한이 수문 개방의 이유로 내세운 수위 상승 역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달 26~27일 임진강 유역에 200~300mm의 비가 온 것은 확인됐으나 그 이후에는 큰 비가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북한 측의 통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둘러싼 남북 당국 간의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도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북한의 무단 방류로 국민들이 사망·실종되는 등 피해를 봤는데도 대북 전통문을 주고받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것도 북한이 사전에 통보해주지 않은 데 대한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했을 뿐 사과 요구 같은 대목은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 정서를 외면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책임 있는 고위 당국자가 대북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책임을 따져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책을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격앙된 국민 여론을 알고 있지만 차분한 대응을 통해 재발방지 등을 협의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며 “경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므로 북측으로부터 정확한 원인을 먼저 들어봤어야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당당한 대북정책’을 펼치겠다면서도 제대로 된 대북 항의조차 하지 못한 물러터진 태도로는 향후 대북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북한이 앞으로는 사전통보 하겠다고 말했지만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임진강 유역 황강댐의 경우 북한 군부가 관할하고 있어 당국 차원의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왔다는 점에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북측의 선처에만 호소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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