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말기암 中소년 이혼한 부모 상대 고소장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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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 3월 12일. 중국 충칭 (重慶) 직할시 외과병원. 17세라고 하지만 10세나 돼 보일까. 병상에 누워 몸도 일으키지 못하는 한 소년이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두 손을 힘겹게 뻗어 고소장을 움켜 잡는다.

그리고 아마 이승의 마지막이 될 자신의 이름을 한자 한자 어렵게 써내려간다.

'자오리 (焦黎)' .부모를 고소하는 고소장에의 서명이다.

'나를 방치한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달라' 는게 소장 요지다.

암말기로 짧은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자오리가 이혼한 부모들을 상대로 소장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 패륜 (悖倫) 의 소장엔 그러나 그의 마지막 소원이 담겨 있다.

비록 자신에게는 짧은 순간이 되겠지만 엄마.아빠가 재결합, 단란한 가족을 이뤘으면 하는 기원이다.

자오리는 부모의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재결합' 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병마의 고통속에서도 부모의 이혼증을 꽉 움켜쥐고 있다.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엔 이혼증이 필요하다' 는 말을 듣고는 몰래 훔쳐 자신의 저금통 속에 고이 간직해온 것이다.

자오리의 부모가 이혼한 것은 지난 84년. 처음 그를 맡았던 엄마는 곧바로 재혼했고, 그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계부가 잘못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자 엄마는 도망친 계부를 위해 그를 인질로 감옥에 보냈다.

이같은 학대로 그는 몸이 날로 쇠약, 정상적 발육상태를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엄마는 89년 두번째 이혼 후엔 그를 아빠한테 보냈다.

아빠 또한 외지를 떠돌아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됐다.

자오리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말. 이제는 더이상 서 있을 수도 없는 상태다.

부모는 올 1월초에야 나타났다.

이미 다른 여자와 재혼한 아빠, 또다른 남자와 세번째 결혼한 엄마가 모처럼 병실로 함께 찾아온 것이다.

기념사진도 한장 찍었다.

불행했던 인생속의 짧으나마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지난 2월 8일 광저우의 양청완바오 (羊城晩報)가 자오리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마지막 정마저 끊었다.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병실에는 뒤늦은 후회로 아들을 지키는 아빠만이 남아 기적을 바라고 있다.

지난 19일 충칭시의 장베이 (江北) 구 법원은 고민끝에 자오리의 고소장을 정식으로 접수했다.

비정의 부모에게 중국 법원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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