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가 푸슈킨 탄생 2백주년맞아 행사 다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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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던 푸슈킨.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이자 세계 문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가 오는 6월6일로 탄생 2백주년을 맞는다.

러시아 전역은 벌써부터 각종 축제와 기념식.강연회 등으로 넘쳐나고 있다.

경제난.체제혼란 등으로 러시아인들이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라 삶에 위안을 주었던 위대한 시인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느낌이다.

러시아 정부는 푸슈킨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출신 이민 3세라는 점을 고려, 탄생 2백주년 기념행사를 최근의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타고 분리주의적 민족주의가 고취되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다양한 이민족이 섞여 사는 러시아의 문화적 포용성을 대내외에 과시할 의도로 행사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작가들의 집단 창작촌인 페레젤키노, 푸슈킨이 한때 살았던 페테르부르크의 마을들엔 그를 기념하는 입간판과 시구 (詩句) 들을 적은 플래카드들도 가득하다.

'예브게니 오네긴' 같은 작품은 연극과 오페라로 재해석돼 공연중이고 그의 생애를 다룬 "안녕하세요! 푸슈킨" 같은 연극도 무대에 올려졌다.

모스크바시와 문화부는 푸슈킨이 신혼생활을 보낸 아르바트 거리의 저택을 새단장해 지난 1월 개관식을 가졌다.

지난달 24일엔 러시아 외무부 주최로 한때 제국 (帝國) 러시아의 외무관리였던 푸슈킨을 기념하는 행사가 외무부 영빈관에서 열렸다. 모스크바 푸슈킨 박물관에서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전역의 푸슈킨 연구가.사료 (史料) 전문가들이 모여 오는 6월까지 '푸슈킨 자료선집' 을 출간하기로 하고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관광업계도 '푸슈킨 특수' 를 누리고 있다.

각국의 푸슈킨 애독자.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푸슈킨이 한때 유형생활을 했던 미하일로프코예 등 푸슈킨 연고지들을 찾고 있다.

모스크바 렌콤 극장가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스미스 라주스킨 (43) 은 "어렸을 때 푸슈킨의 시를 읽고 받았던 감동이 되살아난다" 며 기뻐했다.

푸슈킨의 외할아버지는 표트르 1세 (피터 대제) 시절 에티오피아에서 망명해 대장군 칭호까지 받은 아브람 간니발 장군. 부친은 시.그림에 능한 예술 애호가였고 삼촌도 시인이었다.

고등중학교 재학중 발표한 1백50편의 시가 당대 최고의 시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일찌감치 천재성을 꽃피우기 시작한 그는 절세의 미인이던 부인 나탈리아를 연모하던 프랑스인 장교 당테스와 결투를 벌인 끝에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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