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의 북한탐험] 연재를 마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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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북한여행은 내내 꿈이 아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하는 그 매혹적인 비현실감을 가능한 한 빨리 털어버리고 그 곳을 현실의 정면 (正面) 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현실이라고 해야 지나가는 나그네로서는 기껏 풍물이었고 그 제한된 사정에서는 온전하게 부닥쳐 볼 상황들이 못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눈길을 아예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럴수록 눈은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유서 (由緖) 와 실상을 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컷 보았다.

실컷 보아서 눈이 뜨거운 쇠붙이에 물기가 닿자마자 부지지 하고 싫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조국 산하의 절반인 그곳 풍광 (風光)에 대한 내 원근법은 어쩔 수 없이 슬픔 그것이었다.

나는 사물이나 풍경이 아니라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서 밤을 도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북한 2개 도 (道) 를 제외한 나머지 여러 곳을 다니는 복을 누렸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은 것을 보아 본 것들이 대동소이로 추상화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북한에서의 삶과 문화라는 과제를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터득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그 곳의 나날을 어느 만큼 짐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또 하나의 수확은 내가 북한에 가서 내가 살고 있는 남한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성 만월대에서 저쪽의 태극기와 이쪽의 인공기를 보았을 때는 내 심장이 걷어채이는 듯했다.

백두산에서는 한라산이 보였고 금강산에서는 그 건너 설악산 바람소리가 들렸다.

돌아와서 북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은 것 같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의 사업에 내가 동참한 영광은 길다.

어쭙지않은 글에 생채를 얻은 것은 김형수 차장의 그 치열한 사진 화면 때문인줄 왜 모르겠는가.

여기 인사말도 기구한지라 멀리 미국 동부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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