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안 나오는 아프간 딜레마에 빠진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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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딜레마’에 빠졌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방부에 제출한 보고서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안 나왔지만 AP·로이터통신 등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 “보고서가 오바마가 3월에 발표한 신(新)아프간 전략의 변화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의 핵심인 병력 증파 문제에 대해 “병력 증파가 필요한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를 근거로 “이르면 이달 중 2만1000~4만5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보내달라는 정식 요청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오바마가 병력을 증파할 수도, 그렇다고 군의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사망자, 악화되는 여론=3년 전까지만 해도 2만 명에 불과했던 아프간 주둔 미군 규모는 현재 6만3000명에 달한다. 연말까지 5000명이 더 늘어난다. 이 중 절반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의 명령에 따라 올해 증강된 병력이다.

하지만 대규모 병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전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오바마가 지난 3월 1만7000명의 전투병 증파를 골자로 한 새 전략을 발표한 이래 미군 사망자 숫자는 꾸준히 늘어왔다. 4월 6명, 5월 12명, 6월 24명이 숨졌다. 7월 들어 탈레반이 장악 중인 남부 거점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다. 7월에만 46명, 지난달에는 47명이 사망했다.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미국 내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워싱턴 포스트(WP)와 A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은 싸울 만한 가치가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51%나 됐다. 병력 증파가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24%에 그친 반면 45%는 거꾸로 ‘주둔 병력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이대로는 민주당 선거 참패”=오바마가 이 같은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건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신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다. 안 그래도 의료보험 개혁으로 민심을 잃은 판에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간에 병력을 증파했다간 선거에 참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31일 유명 정치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현재 같은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20석 이상의 의석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렇다고 ‘탈레반 소탕’을 천명한 마당에 전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추가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 연구원은 WP에 기고한 글에 통해 “만약 오바마가 주변 압력에 굴복해 병력 증파를 피한다면 부시처럼 ‘실패한 전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탈레반에) 졌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란 것이다. 오바마로서는 전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이라크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이 때문에 매크리스털의 평가서를 “(오바마에게) 뜨거운 감자”로 비유했다고 미국의 매클래치 뉴스그룹은 전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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