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농협은 차보험사업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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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농협이 자동차 공제사업에 진출할 경우 저렴한 보험료로 농업인들에게 보험가입의 불편을 해소하고 무보험 차량의 감소에 기여한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내포돼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의 자동차 공제사업 진출로 농업인이 이익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최근 몇년동안 자동차보험요율 개정 때마다 할인.할증요소에 지역요인을 감안하자는 논의가 무성했다.

순수보험 이론에서 보면 지역별 보험료 차등화는 전혀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91년 대학으로 전직하고 지방에 내려와 보니 현지 교통사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이처럼 지방, 특히 농촌 인접지역의 도로여건 등이 수도권이나 대도시 지역보다 좋지 않은 것은 국가의 사회간접자본 (SOC) 투자가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지고 지방과 농어촌 지역에 상대적으로 미흡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SOC의 불비로 자동차 사고의 주피해자가 되는 것도 화나는데 하물며 보험료마저도 대도시민보다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절반 가량 더 내야 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농협이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을 목표시장으로 해서 자동차 공제사업을 하는 경우 신용사업이나 유통사업 등 다른 사업의 인력활용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소위 '숨겨진 비용 (hidden cost)' 은 차치하고라도 순수위험 요소면에서 경쟁력이 없고 따라서 농업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재 중.소도시와 농촌지역 보험료의 일정 금액을 수도권과 대도시지역에서 보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동차 보험분쟁이 전체 보험분쟁의 절반 이상을 넘어서고 있는 최근의 추세 속에서 자동차 보험의 원활한 보상처리에는 전국적인 보상조직과 수백명의 보상 전문인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농협이 자동차보험사업을 할 경우 이처럼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사업비 가중요인이 될 것이며, 이러한 대규모 보상조직의 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분쟁 다발로 수많은 민원에 시달리게 돼 농협의 좋은 이미지만 크게 훼손될 우려가 크다.

농협이 현재의 공제사업 외에 자동차 공제사업을 본격적으로 하는 경우 현재와 같은 감독체계로는 많은 문제점이 노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이 생명보험사업과 손해보험사업을 엄격하게 구분해 허가하는 이유는 양 사업계약자의 형평성을 유지하고 리스크 관리의 전문성을 확보해 보험사업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엄격한 구분계리제도, 적정한 준비금 적립방식, 객관적인 분쟁처리제도 등 감독제도의 확립 없이 자동차 공제사업을 허용하는 것은 국가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농업인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의원입법으로 상정된 농협의 자동차공제 진출 법안은 그 장.단점을 농업인의 입장과 자동차 보험의 모집에 생계를 걸고 있는 수많은 대리점.모집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한 후 올 하반기 국회에서 다뤄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희산 전주대 교수.금융보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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