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전관수임제한 불가'에 비판 여론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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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을 계기로 법조비리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전관예우 (前官禮遇)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거론되고 있는 형사사건 수임 제한 방안에 대해 법무부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재야 법조계는 이번 기회에 전관예우 근절에 관한 법제화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법무부는 14일 언론기관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판.검사와 군법무관이 퇴직 후 2년간 근무지 관할구역의 형사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위헌 등의 소지가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 며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법무부는 "형사사건 수임을 제한할 경우 형사사건만 취급해온 검사.군법무관 출신 변호사에겐 사실상 개업지 제한이나 마찬가지" 라며 "개업지 제한 규정은 8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검사와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에게 형사사건을 맡지 말라는 것은 목수 일만 해온 사람에게 미장이 일을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 라며 "이는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의뢰인들 입장에서도 형사사건에 대한 오랜 실무경험이 축적된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게 돼 결국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제약받게 되고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이같은 법은 없다" 고 덧붙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관예우 금지를 위해 ▶재판 또는 수사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자신이 취급하거나 취급한 사건을 특정 변호사에게 알선.소개하는 행위 ▶판.검사 재직 중 직무상 취급했거나 취급하기로 된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수임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시민단체들은 "법무부의 시각은 검사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직역 (職域) 이기주의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고 반박하고 있다.

이석연 (李石淵) 변호사는 "과거 변호사법은 개업지 자체를 제한했기 때문에 위헌 결정을 받았지만 수임제한 규정은 개업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므로 헌법 위반의 문제는 없다" 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韓寅燮) 교수는 "공무원도 퇴직일로부터 2년간 담당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 소지는 없다고 본다" 며 "법조비리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백미순 (白美順) 간사는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시점에서 법무부가 적극적인 전관예우 개선책을 내놓지 않는 것은 아직도 법조비리 현실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 이라며 "법조 개혁을 위해서는 의원입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형사사건 수임제한 규정을 포함시켜야 한다" 고 주장했다.

김상우.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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