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육상 이대론 안 된다 <3> 대구대회 성공을 위한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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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대한육상경기연맹은 대구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외국인 코치 중심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훈련 방식과 다른 방향이니 한번 시도해 볼 필요도 있고, 외국인 코치들이 가르치는 방법과 노하우도 더 뛰어나다고 본다. 또 이들 외국인 코치는 세계 각국에 네트워크도 갖고 있다. 우리 선수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선수들과 훈련을 해야 효율적인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육상연맹이 이런 방향을 정했으면 국내 지도자들이 따라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답답하다. 육상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뛰어야 하는데 이런 원칙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맡은 종목(육상 내의 세부 종목)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종목이나 다른 선수의 발목을 잡으면 아주 답답해진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선수가 집중해서 뛸 수 있도록 정신적·물질적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국내 지도자들이 우리 목표에 대해 발목을 잡으면 선수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선수들이 소속팀 코치의 의견을 무시하고 외국인 코치에게 집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다. 선수들은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야 하고, 지도자들은 선수들을 적극 밀어줘야 한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가 ‘해봐야 어차피 안 될 거다’고 냉소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한국 육상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평소만큼의 기량을 내지 못한다. 사진은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자신의 기록(4.35m)에 미치지 못하는 4.10m에 그쳐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한 ‘한국의 이신바예바’ 임은지. [중앙포토]

이번에 성적이 나빴던 것은 문제지만 선수들이 패배의식을 갖지 않도록 잘 추슬러서 용기를 줘야 한다. 어차피 현재로선 세계선수권의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몇 명에 불과하다. 그 선수들을 잘 이끌어줘야 한다.

선수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국제 대회에 약하다는 것이다. 국제경기에서 더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하는데 해외대회에만 나가면 평소만큼도 못한다. 국내에서 하던 대로만 해도 괜찮을 텐데 턱없이 부족한 성적을 낸다. 선수들이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하던 습관 때문인 것 같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수많은 관중이 모이고 시끄럽고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부담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국내대회도 시끄러운 곳에서 하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양궁이 올림픽을 앞두고 시끄러운 경기장에 적응하기 위해 야구장에서 훈련을 한 것처럼 육상은 트랙이 있는 축구장에서 연습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축구장에서 A매치 경기 한 시간 전 육상대회를 하려고 축구협회 등에 협조를 부탁했는데 성사가 안 됐다. 육상 선수가 축구로 많이 유입됐는데도 축구협회에서 거절해 아쉬움이 많다.

대구 대회를 유치하면서 우리는 국제육상연맹(IAAF)과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 그중 하나가 실내 육상경기장과 육상 아카데미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구시와 정부가 건립예산 및 완공 후 운영권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대회 개막은 채 2년도 남지 않았다. 육상 아카데미 등을 통해 세계 육상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국제연맹과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대외적으로 한국 육상의 신뢰 문제이고, 한국 육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과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2011년 대구세계선수권은 한국 육상 발전을 위한 중요한 대회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 국민이 육상에 관심을 갖고, 스타를 만들고, 육상의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축구 월드컵과 올림픽을 유치한 후 한국 스포츠가 크게 발전했듯이 대구세계선수권대회도 육상 발전을 위한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로는 대구대회가 끝나면 육상에 대한 관심도 식을 것 같다. 더욱이 성적마저 나쁘다면 한국 육상은 국민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구육상을 유치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육상을 발전시키고, 육상인들에게 비전을 줄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 작업은 지연되고 있다. 육상인이나 육상연맹이 잘못한 것은 마땅히 지적해야 하겠지만 정치권이나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육상 발전을 위해 나서 줬으면 좋겠다.

신필렬 육상경기연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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