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조] 風磬(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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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가조(時節歌調), 시조가 말 그대로 ‘시절’에 무심할 수 없습니다. 2003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본지의 중앙시조대상을 받은 정수자(51)씨는 “최근 가신 분들의 빈자리 때문인지, 이런 작품에 마음이 간다”며 김제현(1939∼) 시인의 ‘풍경’을 추천했습니다.

얼핏 시조는 이렇다 할 감흥 없이 밋밋해 보입니다. 첫 번째 수 중장 “그것은, 우리가… ”같은 시행에서는 자유시 같은 느낌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씨는 “찬찬히 뜯어보면 여백 많은 동양화처럼 울림이 긴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시의 화자는 첫 번째 수 종장에서 풍경 소리 안에 사람 귀로는 듣지 못할 뭔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적막’이 그것입니다. 정씨에 따르면 ‘적막’ 같은 시어는 하도 많이 쓰여서 자칫 상투적이기 쉬운 표현입니다. 상투성에서 시조를 구해내는 건 ‘만등’ ‘무상의 별빛’ 같은 표현입니다.

절간의 불마저 꺼진 시간, 산중에는 별빛이 교교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불분명한 것 같은 그 시공간으로 풍경 소리가 흐릅니다. 시의 화자는 말 못할 아픔이 있는 모양입니다. 한낱 쇠붙이일 뿐인 풍경 소리에서 ‘혼자서 우는 아픔’을 읽습니다. 정씨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왠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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