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맥짚기]'개발사기'에 당국 팔짱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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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지방 개발예정지 주변 땅을 사라는 부동산업소들의 전화공세가 극성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내 가정주부에서부터 대기업 임원.중소기업 사장 등 구매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계층에 전화를 걸어 "지금 땅을 사놓으면 몇년내 값이 크게 올라 많은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 는 달콤한 돈 버는 이야기로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어디서 마련했는지 그럴듯한 개발계획도면이나 추진일정 관련 서류를 제시하면서 수요자들을 믿게 만든다. 개발사업이 본격화하면 땅값이 어느 선까지 올라 얼마정도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투자분석까지 곁들인다.

심지어 나중에 땅을 되팔아 준다는 언약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개발계획 도면은 확정되지도 않은, 그야말로 시안 (試案)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오래전에 세웠다가 용도폐기된 것도 있다.

한 술 더떠 자기들이 아예 개발계획을 만들어 퍼뜨린 후 주변 땅을 팔아치우는 수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부동산컨설팅업체가 조만간 온천이 개발된다며 웃돈을 붙여 팔아먹은 강원도 강릉 인근의 임야나 강원도 화천의 스키장 개발건, 충남 보령의 신도시 조성, 전남 운남 신도시 개발계획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사정이 이럴진대 이들에게 속아 큰 손해를 본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정작 수수방관할 뿐이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기문제는 민사사건에 불과한 사사로운 개인 일" 이라는 입장이다. 사기와 진배없는 분양수법으로 투자자들의 유혹한 부동산업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너무 가벼운 것도 문제다.

대개 이런 부류의 사기수법은 형사범이 아닌 국토이용관리법의 '용도지역안의 행위제한' 조항 위반죄가 적용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다. 증거가 불명확해 일반 사기죄로 걸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용도지역안의 행위제한 위반으로 걸려들더라로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 만 물면 될만큼 처벌규정이 솜방망이다. 부동산업자들이 "크게 한탕한뒤 한 1년 살다 나오지" 라고 배짱을 부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약한 처벌로는 투자자들을 울리는 부동산 사기를 근절하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부동산업자들의 사기행각에 대해선 무엇보다 수요자들 자신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피해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게 투자자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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